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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7 19:15 수정 : 2016.12.21 15:46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철학자와 늑대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추수밭(2012년)

여기 ‘96% 새끼 늑대 판매’라는 광고를 보고 진심 반, 호기심 반으로 홀리듯 그곳을 찾아간 남자가 있다. 일단 만나본 다음 생각해볼 작정이었지만, 엄마 늑대 발밑에서 뛰어다니는 동글동글하고 복슬복슬한 새끼들을 보자마자 그는 당장 가장 가까운 현금인출기로 달려갔다. 그렇게 수놈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웨일스어로 왕이라는 뜻의 ‘브레닌’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브레닌은 흡사 그리즐리 베어의 새끼처럼 보였는데, 꼬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파이프를 뜯어대며 파괴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늑대는 30초도 못되어 집중력이 흩어지는 동물인지, 조금만 지루해지면 물건을 물어뜯고 여기저기에 오줌을 쌌다. 브레닌과 함께한 지 한 시간 만에 1000달러가 날아갔다. 500달러는 브레닌을 입양하는 데, 그리고 나머지 500달러는 에어컨을 수리하는 데. 정말 귀엽지만 파괴적인 생물체였다.

늑대와 함께 살아보기로 결심한 이 남자는 바로 현재 마이애미 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마크 롤랜즈이다. 그는 실과 바늘처럼 늑대와 붙어서 지낸 11년의 기록을 <철학자와 늑대>에 담아냈다. 철학자답게 단순한 동물 관찰기가 아니라, 늑대의 모습에 비춰 인간성의 본질과 인생의 의미를 탐구했다.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브레닌과 함께 보냈다. 강의실에도 데려갔는데, 브레닌은 낮잠을 자다가 곧 깨어나 수업이 지루하다는 듯 목을 빼고 길게 울었다. 그는 늘 강의계획표에 다음처럼 써둬야 했다. “늑대가 있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에 먹을 것이 들었다면 꼭 가방을 잠가두세요.”

저자는 브레닌의 성장을 지켜보며 영장류가 가장 우월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지능만 해도 영장류가 늑대보다 월등히 우월하다고들 하지만, 애초에 진화 과정에서 인간과 늑대의 선택지가 달랐을 뿐이다. 인간은 오랜 진화의 역사 동안 생존을 위해 계략과 속임수를 택했고, 그 덕분에 정교한 예술과 문화, 과학이 발달했다. 그런데 사냥은 어떨까? 본능적으로 사냥에 능숙한 브레닌과 숲을 달리면 늘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인간은 보통 이성을 달리기 속도나 지구력보다 우월하게 여기지만, 결국 우월성은 상대적인 것이며, 정당화할 만큼의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브레닌이 세상을 떠나자 저자는 ‘죽음’의 탐구에 몰입한다. 저자가 브레닌을 땅에 묻고 브레닌의 환영을 보며 슬퍼하는 동안, 브레닌과 함께 뛰놀았던 늑대개는 브레닌의 사체를 한 번 킁킁거리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저자는 이것이 자신과 늑대개가 인식하는 시간의 개념이 다름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인간은 늘 시간의 일직선상에서 ‘미래’, 즉 욕망과 목표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현재에도 결국은 과거와 미래가 섞여 있다. 이에 비해 늑대는 마치 니체가 주장한 ‘영원 회귀설’과 같이 매 순간을 ‘완전한 순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듯하다. 물론 저자가 목표와 욕망을 좇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삶이 사소한 목표나 목적으로 채워진다 하더라도, 이들이 삶의 의미가 되긴 어렵다는 뜻이다. 최고의 순간은 “존재의 지향점이나 삶의 누적”이 아닌, 우리가 누리는 긴 세월 순간순간에 흩어져 있다. 이 ‘완전한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박혜미 알마 편집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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