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서영 등 지음/RHK(2015) 박소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은 “야근할 시간에 뜨개질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급조된 모임 ‘Nuguna Knit’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내 영화는 노동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회사 업무의 압박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 이후 모임이 일 년이 넘도록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흘러갔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멤버 한 명이 선언하듯 이야기한다. 내가 야근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내 탓이 아니라고, 자꾸 계획에도 없던 일을 급하게 던지는 회사 탓이라고 말이다. 계획한 업무를 다 소화하지 못해 오늘도 꾸역꾸역 김밥을 집어삼키며 야근을 하면서 본인의 ‘일 못함’을 두고 자괴감에 빠져들 무렵,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 못하는 게 모두 내 탓인가?”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저자들이 소속된 페이스북 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는 이면지 도장을 반대로 찍었거나 보고서에 치명적인 오타를 내는 바람에 오늘도 창조 경제에 기여했다는 실수담에서부터, 상사의 막말이나 야근의 설움, 귀갓길에 들르는 편의점에서 인기 있는 간식 후기까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사연들이 속속 올라온다. 회원들이 매일같이 ‘일못’을 인증하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그룹은 이미 회원 만 명을 돌파한 ‘일 잘하는’ 그룹이기도 하다. 이 책은 줄곧 일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에 관해 되묻는다. 환자 앞에서 항상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의사가 환자의 죽음 앞에 눈물을 터뜨렸을 때, 일의 쓸모를 잘못 판단해 상사의 눈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먼저 처리했을 때, 지하철 기관사가 고장 난 스크린 도어를 지켜보느라 운행이 지연됐을 때, 우리는 일의 ‘효율’만을 따지며 상대가 일을 못했다고 탓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회사에서 ‘일못’으로 찍히는 사람들 중 많은 경우가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다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규정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직의 효율을 해치는 순간 그 사람은 ‘일못’이 되는 것이다. 업무 능력에 딱히 문제가 없더라도 상사와의 호흡이 맞지 않아 일순간에 일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조직에서 정해둔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한 나머지를 ‘패배자’로 만드는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경영의 효율을 이유로 인원 몇 명을 감축한다는 발표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들이다.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의 존엄함이 승인되지 않는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더 살기 힘든 곳이 될 거라고 말한다. 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의 또 다른 멤버는 회사에서 명확한 이유를 공지하지 않고 임금 협상을 미루자, 그간 잊고 있었던 회사의 ‘취업규칙’을 찾아보고, 외부 기관에서 노동법 강의까지 찾아 듣는다. 비록 이들의 뜨개질 모임은 계속되지 못했지만, 그들의 노동과 노동환경에 관한 고민이 지속되었다는 데서 모임은 충분한 역할을 한 걸지도 모른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1프로가 아닌 99프로, 우리들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그룹이 소중한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는 수면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절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 대해 좀 더 마음껏 떠들고, 우리의 노동권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박혜미 출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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