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4.06 19:01 수정 : 2017.04.06 19:18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강철군화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궁리(2009)

철학자인 내 선생님은 소설을 못 읽겠다고 하신다. 왜 그러신가 여쭈었더니 당신이 마주치는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변화무쌍하고 드라마틱하여 소설 속의 허구에는 도무지 이입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실타래처럼 얽힌 현실의 논리를 푸는 데 몰두한 철학자에게는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원래 소설 속의 장치와 허구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일단의 측면들만을 과장함으로써 현실을 투명하게 만들려는 의도인 것을. 소설은 현실을 왜곡하지만, 그 왜곡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고자 한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는 그런 점에서 어떤 소설보다 소설적 허구와 과장으로 범벅되어 있지만, 그것을 통해 시대의 한 측면을 비추는 데 압도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1908년 출간된 이 소설은 20세기 초 산업발전의 최전성기에 산업자본의 민낯과 계급투쟁의 양상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내어 세계적 선풍을 일으켰다. 딱딱한 사회주의 이론서를 한 권의 소설로 읽는 셈이니, 미국은 물론 유럽과 소련에서까지 독자의 각광을 받은 것이 이해된다. 나는 1980년대 이른바 ‘사회과학의 시대’에 처음 번역된 이 소설(1989년 한울출판사 출간)을 읽고 옮긴이의 말대로 “피를 끓게 하는” 흥분을 느낀 기억이 난다.

<강철군화>는 1932년 ‘시카고 코뮌’이라는 가상의 노동자 폭동을 배경으로 어니스트 에버하드라는 혁명지도자의 궤적을 그린 소설이다. 그의 아내인 애비스 에버하드의 기록을 27세기에 실현된 ‘인류형제애 시대’에 발굴하여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는 점도 흥미롭다. 미래의 눈으로 본 20세기 초 시대상은 또 얼마나 잔인하고 기이한지.

이 책은 후일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에드거 후버가 미국 70개 도시에서 벌인 대대적인 노동소탕 작전(이후 미국 노동운동은 거의 궤멸하다시피 한다)이나, 1920년대 말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의 파시즘 대두를 한참 전에 예견하듯 그려낸 점에서도 놀라움을 준다. ‘강철군화’라는 말은, 자본의 하수인이 된 권력, 비밀경찰, 국가기관의 테러, 노동귀족의 타락 등에 맞선 노동계급의 처절한 투쟁에 대해 자본의 입장에서 던지는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우리는 너희 혁명분자들을 우리의 강철 뒷굽으로 깔아뭉갤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얼굴 위를 짓밟고 걸을 것이다.”

잭 런던의 이해가 스펜서 부류의 사회진화론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든지, 그의 소설이 늘 영웅주의에 빠져 있다든지 하는 비판에는 일부 옳은 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지적 이전에 이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다. 사회주의 계급투쟁과 노동운동에 찬성하건 하지 않건 말이다.

<강철군화>를 읽은 다음에는 1949년 출간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는 게 순서다. 역시 미래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유명한 소설에서는 잭 런던이 예견한 파시즘이 완성된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현 정부에 대해 늘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전조를 의심했듯이, 파시즘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들을 소설로 확인할 수 있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 이번주부터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가 집필합니다. 4주 간격으로 세 권의 책을 소개하며, 그중 한 권은 자사 책을 씁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