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지음, 김동규 옮김/사월의책(2013) 철학이라는 학문의 효용을 가끔 생각해본다. 사람이 수십 년쯤 살다 보면 누구나 ‘사생활의 천재’가 될진대, 인간과 세상의 이치를 굳이 골 아프고 생경한 용어들로 엮어내는 이 학문의 쓸모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다. 하긴 역사학이나 경제학은 안 그런가. 나란 사람이 생겨난 내력이나 돈 잘 모으고 쓰는 법을 알면 그뿐, 이들 학문이 내 삶에 직접 도움을 주는 게 무엇인가 싶다. 그래서 같은 철학, 역사학, 경제학책이라도 난해한 그 이론들을 삶의 문제에 밀착하여 풀어낸 책들을 만날 때는 더욱 반갑다. 학술을 그저 쉽게 요약 해설한 이른바 ‘대중 인문학서’ 말고 아무런 이론 없이도 큰 철학적 울림을 주는 책들 말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는 굳이 분류하자면 철학에세이쯤에 해당하는 책인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도 마음의 여진이 남는다는 점에서 차라리 문학서라 할 만하다.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라는 부제목처럼 서양 고전을 종횡무진으로 ‘의미’의 문제를 추적하는 책이다. 인간은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다. 그냥 밍밍한 국수의 한 종류일 뿐인 평양냉면의 정통성과 비법을 둘러싸고 죽일 듯 논쟁을 벌이는 것부터, 지난겨울을 내내 밝혔던 촛불에 거대한 헌정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우리들의 천성이다. 이 책은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 그 ‘의미’의 유래를 통해 우리가 지켜왔던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책은 첫머리에서부터 지하철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 무작정 몸을 던진 의로운 노동자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소개한다. 농구코트에서 신들린 듯 마지막 한 점 슛으로 팀을 승리로 이끈 농구선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행동은 어떤 의로운 의도나 빼어난 기량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은 사건을 마주쳤고 뭔가에 이끌린 듯 그 일을 해치운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저자들은 단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숭배하는 의미란 나에 의해서(by)가 아니라 나를 통과해서(through) 나오는 것이라고. 고대 호메로스에서 시작해 중세의 단테를 거쳐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이르는 고전들에서 저자들이 길어내는 핵심은 초지일관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와 자유를 구가하는 우리 현대인이 오히려 삶의 왜소함과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는 나 개인이 더는 이 세상의 의미를 창조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그 생각은 시작부터 틀렸다. 우리 인간은 한 번도 세상의 의미를 창조한 적이 없었고, 그런 착각은 기독교의 신이 보장했고 또 근대가 세뇌한 인간 주체의 특권적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나 자신이 의미의 주창자요 선포자라는 믿음은 일쑤 광신주의의 맹목을 낳는다. 내가 알고 믿는 것이니까 옳지 않을 수가 없다는 논리 말이다. 신, 자연, 혹은 거대한 우주를 상징하기도 하는 흰 고래에 영웅적으로 맞선 에이허브 선장의 파탄은 인간 주체의 파산을 선고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저자들은 고대의 다신적 태도의 부활을 촉구한다. 나를 넘어선 신들의 세상이 그때그때 내리는 신탁에 나를 끊임없이 튜닝하여 살아가는 자세 말이다. 글쎄 그것이 뭔지는 책을 읽어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지. 하지만 빛나는 것들만이 있는 법이지”라는 책의 알쏭달쏭한 마지막 문장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매해 한 권 뽑는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꼽혔다는 건 덤으로 알려드린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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