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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음식을 만든다 |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뿌리와이파리(2006)
남산자락에 있는 어느 식당에 가면 무척 재미있는 식사를 하게 된다. 사람 얼굴만 한 왕돈가스에 된장찌개, 쌈장과 풋고추를 곁들여 내고 포크, 나이프,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해 먹는다. 진정 퓨전이자 무국적 또는 다국적 상차림이다. 한국인은 돈가스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고기가 얇고 나이프로 썰어 포크로 먹고 빵을 선택할 수가 있다면 경양식 돈가스, 고기가 두껍고 미리 썰려 나오며 젓가락으로 먹고 무조건 밥이 나온다면 일본식 돈가스, 앞에 이야기한 남산 왕돈가스 스타일은 기사식당 돈가스다.
이런 돈가스의 사정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책이 오카다 데쓰가 쓴 <돈가스의 탄생>이다. 이 책은 돈가스라는 음식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밝히기 위해 일본의 육식 문화사, 빵의 전래사, 기름을 이용한 조리법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7세기 덴무 천황이 육식을 금지한 이래, 일본인은 사냥한 짐승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유신을 전후한 시기다. 빵이 일본에 전래된 것은 16세기 포르투갈인을 통해서라고는 하지만 19세기 중반에서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기름을 이용한 조리법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는 돈가스가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기 때문이다. 돈가스는 메이지유신 무렵 서양의 커틀릿이 전해져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음식으로 탄생한 것이다. 오카다 데쓰가 제시하는 커틀릿과 돈가스의 차이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먹는다는 것과 빵이 아닌 밥과 먹는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돈가스를 일본음식으로 완성한다.
<돈가스의 탄생>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한국화된 남산 왕돈가스의 탄생 사연까지 상상하게 된다. 또 유사한 한국 음식을 떠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서양의 음식이 한국에 들어와서 완전히 다른 모양을 갖게 된 대표적인 음식은 양념치킨이 아닐까. ‘후라이드치킨’이 고추장과 물엿 양념소스를 입고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음식으로 탄생했다.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 수보다 많다는 한국 치킨집의 시작이 바로 양념치킨이다.
나는 2004년 출간된 <돈가스의 탄생>이 ‘음식인문학’ 책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감자, 대구 등을 다룬 훌륭한 책이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식재료를 역사적으로 다룬 책이다. 방송으로 치자면 <스페셜 다큐멘터리>랄까. <돈가스의 탄생>은 식재료가 아닌 조리된 음식을 탐구한 책이며 한 시대의 사건과 문화적 충격을 횡적인 구성으로 다뤘다. <VJ 특공대>처럼 읽기 쉽고 대중적이다. 이 책과 함께 주목할 만한 책이 2002년에 출간된 오쿠보 히로코의 <에도의 패스트푸드>로, 에도 시대가 어떻게 일본의 전통음식 스시, 소바 등을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두 책 모두 한 시대가 어떻게 음식을 새롭게 만들었는지 조명한다. 두 책이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를 꼽자면 한국인도 즐겨 먹는 음식을 다루고 있으며 읽다가 먹고 싶어지면 당장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다룬다는 것이겠다.
이 책 이후로 여러 사람이 음식인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다양한 책이 출간되었다. 물론 이 책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음식인문학 책들이 나왔다고 하기에는 억지스럽지만 시기적으로는 그렇다. 요즘 방송은 먹방과 쿡방의 전성시대다. 하지만 음식인문학 책은 아직도 다양하지도 풍성하지도 않다. 나 같은 음식인문학 마니아는 아직도 무척 허기지다.
박성경 따비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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