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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7 18:58 수정 : 2017.09.07 19:39

[편집자가 고른 스터디셀러]

서울을 먹다
황교익·정은숙 지음/따비(2013)

2011년 봄, 서울 종로 한 빈대떡집에 세 사람이 모였다. 요즘은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당시에는 알아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한국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일본에서 40여 권 펴낸 인터뷰의 달인 정은숙 작가, 그리고 내가 있었다.

우리는 과연 서울음식이란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궁궐이 서울에 있었으니 궁중음식이 서울음식인가? 양반이 많이 살았을 터이니 반가음식이 서울음식인가? 무릇 어디의 음식이라 하면 그 향토에서 난 식재료가 있어야 하는 법. 서울에선 뭐가 났나? 우리의 결론은 ‘지금 서울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서울음식’이라는 것이었고, 그 결론은 새로운 과제로 이끌었다. 지금 서울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들여다보자. 그럼 서울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일 것이다. <서울을 먹다>라는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여름 공덕동에서 첫 취재를 시작했다. 마포 하면 떠올리는 돼지갈비였다. 처음 방문한 최대포집에서 대폿집의 역사를 만났다. 1963년에는 고기 한 점에 5원, 막걸리 한 잔에 5원, 소주 한 잔에 5원을 받았다고 한다. 퇴근길에 대포 한잔 걸치고 집으로 가는 1960년대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리며 다른 집들을 찾았다. 돼지껍데기(껍질), 목살구이, 돼지갈비 등을 먹으며, 파는 이, 먹는 이와 인터뷰를 했다. 이쯤 되니 내 몸엔 비릿한 돼지 냄새가 완전히 배었다. 그렇게 취재를 마치는가 했는데, 두 명의 작가는 다른 집에서 한 판만 더 먹으며 취재를 하자고 한다. 다섯 번째 식당의 불판에 돼지꼬리가 올라앉는 모습을 보자 도망치고 싶었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진 취재 내내 나를 괴롭히는 돼지 냄새에 구역질까지 날 지경이었다. 먹을거리 취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날 취재를 마치며, 만약 아내가 나에게 지금 당장 삼겹살을 먹자고 할 때 두말 않고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사랑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첫 취재에서 음식이 아닌 사랑의 기준을 세웠고, 소주 한 잔 없이 돼지구이를 먹는 것은 확실히 괴로운 일임도 확인했다.

<서울을 먹다>의 취재는 계절을 넘겨 계속되었다. 서울 토박이의 대표 음식인 설렁탕에서 식민지 조선의 경성을 보았고, 종로 빈대떡과 막걸리 사발에선 한국전쟁 직후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만났다. 마치코바(시내의 작은 공장들을 1980년대까지 그렇게 불렀다)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왕십리 곱창 골목을 돌아 장충체육관의 열기가 느껴지는 족발 골목도 가봤다. 취재 직후 사라진 영등포 감자탕 골목에 있던 낡고 허름한 감자탕집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의 인생사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지금은 돌아가신 체부동 기름떡볶이 할머니를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만났다. 서울음식 속에는 개발독재 시절 통금을 피해 밤새 고고장에서 춤을 추던 젊은이도 있었고, 떡볶이를 앞에 놓고 수줍게 미팅을 하던 고등학생도 있었다. 그렇게 음식을 통해 만난 서울은 가난했다. 전쟁 때문에, 가난 때문에 몰려든 이주민의 도시이기도 했다.

<서울을 먹다>는 1년 가까운 취재를 거쳐 두 작가가 자기 방식의 글을 써서 완성했다. 부제가 ‘음식으로 풀어낸 서울의 삶과 기억’인 이 책을 나는, 서울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찍어놓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출간하고 아쉬운 점은 400쪽이 넘는 제법 두툼한 분량에도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못 담은 이야기를 다시 묶어보고 싶고, 다른 도시의 삶도 기록하고 싶다.

박성경 따비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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