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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자와 세이이치로 외 지음, 정지호 외 옮김/삼천리(2013~2018) 사람은 가까이서 겪어봐야 알 수 있다고들 한다. 세간의 평판이나 이런저런 얘기가 틀릴 수 있고, 선입관이나 편견을 걷어 내지 않고 속단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어떤 공동체나 특정 국가라면 어떨까? 이미 형성된 ‘이미지’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굳어지면 아무리 새로운 정보가 나오고 현실이 증명해 주어도 받아들이기 힘든 법이다. 비교정치학이나 인류학에서 말하는 ‘내재적 관점’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들이 걸어온 역사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사이 이웃 나라 중국을 두고 말들이 많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26일 개막한 19기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 폐지를 담은 헌법 개정안을 제시했고 곧 절차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진작부터 서방 언론은 ‘장기 집권’ ‘1인 체제’ ‘시황제 시대’ 운운했고, 우리 언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이제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중국근현대사 사리즈’는 2010년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에서 첫 권이 출간된 이래 최근 6권 ‘중국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완간되었다. 무려 9년 만이다. 오래 걸린 만큼 역사학자들의 실증적인 연구와 출판사의 노력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 ‘통사’를 총천연색 그림으로 채색해 놓았다. 이 책의 저자 일곱 명은 성급한 단정이나 예측을 배제하면서 지방정부의 원심력과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개인이나 시민사회의 움직임까지 면밀하게 살펴 ‘거대한 산맥’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변화된 국제관계에 대응하는 중국 지도부의 움직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냉전적인 시각이나 중국 공산당의 역사관과 뚜렷하게 선을 긋고 있다. 20세기 상황에서 나온 서양 학계 중심 외부의 지정학적 인식을 깨부수는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통사를 지향한다. 가장 큰 특징은 세계사와 동아시아사의 흐름 속에서 조계와 연안도시,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와 이웃하는 변경 지역의 사정도 고려하면서 ‘동아시아’를 넘어서는 중국의 모습을 그려 낸다는 점이다. 신장 오아시스 지역은 물론 일본, 조선,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인도, 소련에 이르기까지 주변 지역에도 관심을 기울여, 국제관계에서 영향력을 강화해 온 과정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중앙정부와 공산당 지도자 중심이 아니라 지방 사회와 기층 민중의 문화와 생활상의 변화를 비중 있게 다룬다. 당대의 잡지와 영화, 문학 작품을 분석해 시대상을 복원하고 사회경제와 문화, 사상, 도시의 발전과 변동을 드러낸다. 경천동지할 크나큰 변화와 발전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난징조약(1842년)을 체결한 이래 끝없이 추락했던 청나라에서 기적처럼 화려하게 부활한 중국의 발걸음을 보노라면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인류 역사에서 어떤 국가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다. 거침없는 중국의 행보는 만만찮은 현대사를 달려온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이웃 나라가 그들의 꿈을, 그들만의 길을 돌파하려 몸부림치던 지난 9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송병섭 삼천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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