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2017) 흔히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서 인생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치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흔히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명씨로 죽는다. 당연히 이들의 삶에 극적인 상승이나 몰락이 존재할 리 없다. 명망 있는 중견평론가였던 K는 어느 날 일본 고쿠라(小倉)에 사는 다가미 고사쿠라는 낯선 이의 편지를 받는다. 내용인즉슨 현재 모리 오가이(森?外)의 <고쿠라 일기>를 조사하고 있는데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지 판단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루는 일본의 대문호이자 군인이기도 했던 오가이는 한때 권력투쟁에서 밀려 고쿠라에 머문 적이 있는데(1899~1902년), 이때 그가 쓴 일기가 바로 <고쿠라 일기>이다. 그런데 이 일기는 분실된 상태였고 많은 문학연구자가 이를 애석히 여겼다. K가 문제의 편지를 받은 때는 이미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시기인지라 고쿠라 사람 중에도 오가이가 이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아는 이가 드물었을 뿐 아니라 그와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들도 거의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다가미의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일생을 가치에 투자한 사람으로 정치운동에 몰두하느라 가산을 탕진했다. 그리고 수많은 혼담으로 인한 난처함을 모면하기 위해 딸을 조카와 결혼시켰는데, 얼마 후 장애를 가진 다가미가 태어났다. 언어장애가 있었고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렸고 다리를 절뚝거렸다. 지적인 능력은 보통사람을 능가했지만, 그것이 그의 육체적 장애가 가진 우스꽝스러움을 상쇄시켜 주지는 못했다. 사람들도 그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그의 존재를 일상공간 안에서 온전히 받아주지는 않았다. 이에 낙담한 다가미는 결국 사회와 담을 쌓는데, 이를 가장 가슴 아파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자신이 죽은 후 홀로 남겨질 아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가미를 친절한 간호사와 맺어주려고 시도하지만, 차가운 비웃음만 당한다. 자신의 불우한 삶을 한탄하던 다가미는 우연히 <고쿠라 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K로부터 긍정적인 답변과 격려를 받자 마치 한줄기 빛을 발견한 것처럼 거기에 온 열정을 쏟아붓는다. 열심히 자료 수집을 하고, 오가이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걷고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문전박대를 감수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 주목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아 지방신문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리기도 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 묻힌 대문호의 3년간의 일상이 조금씩 복원되어 갔다. 하지만 전쟁이 격화되자 그의 작업은 관심 바깥에 놓이게 되었고 다가미 가족도 공습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다가미의 몸이 영양실조로 급격히 나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41살의 나이로 원고 더미만 남긴 채 죽는다. 그런데 1년 후 도쿄에서 <고쿠라 일기> 원본이 발견된다. 화자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다가미 고사쿠가 이 사실을 모른 채 죽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다.”
|
※ 이번 주부터 조영일 도서출판b 주간이 집필합니다. 4주 간격으로 세 권의 책을 소개하며, 그중 한 권은 자사 책을 씁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