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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8 18:22 수정 : 2018.11.09 09:34

[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소설의 이론
게오르크 루카치 지음, 김경식 옮김/문예출판사(2007)

김윤식 선생이 남긴 책은 무려 200여권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늘 성주가 아닌 묘지기임을 자처했다. 그런데 그의 웅대한 저작들을 헤매다 보면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는 에피소드와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1970년 일본 한 서점에서 죄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1916)을 발견했을 당시 가진 두근거림이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때 일을 회상하는데, 짐작건대 이 책은 평생에 걸친 그의 작업을 비춰준 등불이었을 것이다.

<소설의 이론>은 이후 80년대까지 한국 문학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책이 된다. 특히 첫 부분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는 ‘근대소설’이라는 형식이 문제 될 때마다 등장하는 클리셰였는데, 여기에 담긴 강한 시적 정취는 ‘문학의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했다. 사실 이에 비하면 ‘소설이 부르주아 시대의 서사시’라는 것 따위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한국인의 루카치에 대한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별나다. 물론 지금은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처럼만 간간이 회상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애틋함이 이 책에 대한 이해수준을 반영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가장 많이 입에 오르지만 정작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한 책, 이것도 책의 여러 운명 중 하나라면, 특별한 일이 아니긴 하다.

그렇다면 <소설의 이론>은 왜 그토록 사랑을 받은 것일까. 이는 저자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쓴 서문(1962)에서 진단한 다음과 같은 특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파악된 특징으로부터 일반적인 종합개념을 만들어 내서는 이러한 일반화로부터 연역적으로 개별적 현상에 접근하여 설득력 있는 하나의 포괄적 종합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데 이는 200여권에 달하는 김윤식 저작군에 대한 해설로도 읽힌다.

<소설의 이론>은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가 주로 언급하는 것은 제1부, 그곳 첫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근대소설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다루는 것은 제2부이다. 추상적 이상주의로서 <돈키호테>를, 환멸의 낭만주의로서 <감정교육>을, 종합적 시도로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그리고 사회적 형식을 넘어서려는 시도로서 톨스토이의 소설과 새로운 전망으로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언급한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제2부이다. 그리고 그렇게 읽었을 때 이 책이 일종의 ‘교양소설론’(현실을 대하는 영혼의 크기가 핵심인)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루카치는 이런 시도를, 개념이라는 외투를 억지로 입힘으로써 작품을 왜곡시켰다고 반성한다. 물론 이런 자아비판에는 과장이 들어 있을 수 있으며, 또 그로 인해 <소설의 이론>이 가진 ‘서론’으로서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약 20년 후 일종의 ‘본론’으로 <역사소설론>(1937)이라는 대작을 썼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흔히 오해되는 것처럼 이것은 하위장르로서 ‘역사소설’을 다룬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설의 이론>의 속편으로 쓰였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제 서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도 됐다.

조영일 도서출판b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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