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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9 19:55 수정 : 2016.12.30 09:53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김해원 지음/사계절(2015)

누구라 할 것 없이 점점 더 읽는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대다. 설혹 읽는다 해도 짧은 호흡을 선호한다. 몇 년 사이 특정 주제로 엮인 앤솔러지 형태의 청소년 소설집이 여럿 선보였는데, 이 역시 십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안간힘이지 싶다.

김해원의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는 날렵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단편집이다. 몇몇 단편은 무협지를 떠올릴 만큼 유머러스하며 재기발랄하다. 그러나 왕따, 학교폭력,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야기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추락하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아버지들의 비루함과 누나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았나 싶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종내는 십대들의 서글픈 이야기다.

‘가방에’라는 단편도 처음에는 아버지로 시작했으나 곧 아들의 서사가 된다. 아주 오랫동안 띄어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해온 문장이 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이다. 돈을 떼이거나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면 경준이 아버지는 정말로 보일러실 구석에 있는 가방에 들어간다.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돈을 벌어온 적이 없는 아버지, 술주정에 손찌검까지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큰소리를 친다. “내가 돈을 벌려고 얼마나 온갖 더러운 꼴 다 하면서 용을 썼는지” 아느냐고.

경준이는 안다. 세상에는 뛰는 놈과 나는 놈이 있으며, 아버지는 나는 놈은커녕 뛰는 놈에게 당하고 마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걸 말이다. 아버지는 기껏 남의 등이나 쳐서 푼돈을 벌어들이지만 그마저도 늘 더 강하고 힘센 이들에게 빼앗기는 비루한 약자일 뿐이다.

한데 경준이도 실은 아버지와 다를 게 없다. 학교 내 폭력조직 아이들에게 군소리 한 번 못하고 성심성의껏 라면을 끓여주고 있다. 그동안 ‘라면을 끓여 먹여 키운 아이들’이 동네 피시방의 돈통에 손을 대는 바람에 경준이가 그동안 라면셔틀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정작 경준이를 제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그토록 잘 보이고 싶었던, 여신과도 같은 사회 선생님 앞에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용기도 배짱도 없는 경준이는 그날 아버지가 그랬듯 가방 속에 들어간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삶이 궁핍하니 모두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헛꿈을 꾼다. 김해원의 단편을 찬찬히 읽어보면 십대들의 삶 역시 비슷하다. 어른들의 허세를 비웃지만 아이들은 제일 먼저 이런 비루함부터 배운다. 굴절된 욕망은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 앞에서나 폭발될 뿐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결과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틀어진다. 그럼에도 작가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아이들을 보듬고 있다. 아버지가 애용하던 가방에 들어간 경준이는 어떻게 됐을까. 의외로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 아버지는 자궁 안에서 평화로웠던 시절이 그리워 가방에 들어갔던 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어떨 때 가방이 필요할까. 중학교 2학년부터.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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