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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10 20:40 수정 : 2017.05.10 21:00

권용득

[ESC] 권용득의 살림

권용득
“조선시대가 좋았지.” 가깝게 지내는 고향 친구가 이따금씩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고향 친구가 조선시대에 태어난 건 아니다. 정시 퇴근은커녕 걸핏하면 출장에, 쉬는 날은 온갖 집안일과 육아에 지친 나머지 친구는 종종 거래처가 아닌 우리 집으로 출장을 온다.(이 사실이 친구 부인에게 알려지면 그 출장은 앞으로 어려워질 수도 있다) 말하자면 친구의 “조선시대가 좋았지”는, 오랜만에 술 한잔하면서 내뱉는 우스갯소리인 셈이다. 신세한탄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생존해 계신 조선시대 사람이 있다면, 친구의 말에 과연 얼마나 동의할까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조선시대도 힘들었거든!”이라고 대답하면 어떡하지? 물론 친구의 심정은 일면 이해가 간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만큼 집안일이나 육아를 거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남편과 자식 뒤치다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보고 배운 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해 아내를 ‘돕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억울할 수도 있겠고, 지금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려’ 아침 밥상을 조선시대 남자처럼 대접받는 아버지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성 평등에 관한 시대적 요구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남성들이여, 이 난관을 똘똘 뭉쳐 ‘힘으로’ 헤쳐 나가세!” 하며 남자들끼리 거국적인 연대를 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 시대적 요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 수도 있겠다. 대충 아버지처럼 살면 되겠지 하며 우물쭈물하는 동안 선택의 시간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고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선택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아이를 위한 두뇌 사용 설명서>라는 책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장수의 비결은 ‘자기주도성’이다. ‘노인들도 자발적인 일과 활동을 계속하는 편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얘긴데, 늦둥이를 둔 사람들이 비교적 오래 산다고 한다. ‘노인들이 어린 자식이나 손자나 약자(병든 노인)를 보살피면 자기주도성으로 면역력이 강해지고 오피오이드계의 활성이 코르티솔(호르몬의 일종)을 낮추기 때문’이라고 한다.(반려동물을 돌보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음 대목이 중요하다. 통째로 인용하자면, ‘특히 아이를 돌보는 일을 맡은 남성은 여성보다 평균수명이 더 길어진다. 원숭이의 경우에는 부모의 성별과 상관없이 새끼를 돌보는 어버이가 10~20% 정도 더 오래 산다.’ 놀랍지 않은가? 돌봄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수명이 길어진다니, 전국의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대체 얼마나 장수를 하실까.

실은 이게 딱히 과학적인 증명이 필요한 연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돌봄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회식이나 접대에는 그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술을 덜 마시게 된다.(돌봄 노동이 힘들어서 술을 더 마시는 경우도 있긴 있다) 또한 말이 잘 안 통하는 아이를 돌보면서 인내심을 기를 수도 있고, 아이와의 유대관계와 부부관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회적 성공이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소중한 가족을 잃고 고독사 할 일은 없다는 얘기다.

‘밑이 빠진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그게 무슨 말인 줄 몰랐다.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들이 밭일을 하다 아물지 않은 자궁과 골반에 문제가 생겼고, 그 고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얘기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오랜 세월 밑이 빠지도록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진짜 2017년이라면, 그동안 여자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아이 돌봄 노동에 ‘돕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둘이 같이 낳았는데, 왜 아직도 대부분은 엄마가 혼자 키우냐 이 말이다. 사회적 분위기나 제도가 뒤받쳐 주지 않는다면, 그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를 바꾸자고 요구해야 한다. 물론 제도만으로는 어렵다. 근본적으로는 일단 우리 모두 ‘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케아코리아의 인사담당자인 헬레 매드슨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있냐는 물음에, 40대 초반의 한 주부를 꼽았다. 그 주부는 자신과 같은 경력단절 여성을 왜 면접 대상자로 뽑았는지 궁금해했고, 헬레 매드슨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본 주부의 힘은 대단하다. 이런 경험을 갖고 우리 회사에서 일한다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돌봄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오래 살 수 있고, 심지어 ‘주부의 힘’을 알아주는 이케아 같은 회사도 있다. 이 정도면 우리 모두 주부가 되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권용득 만화가·<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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