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29 20:11
수정 : 2017.03.29 22:32
|
게티이미지뱅크
|
[ESC] Y기자, 내 인생은 시트콤
|
게티이미지뱅크
|
그러니까 모든 일의 시작은 수박이었다. “수박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엄청난 재난의 싹을 틔웠다. 수박, 그게 뭐라고.
2007년 여름, 첫째를 임신한 나는 남편과 함께 친정인 제주도로 휴가를 갔다. 식탐이 많아지는 시기에 갑자기 수박이 먹고 싶었다. 핑계는 물론 “뱃속의 아이가 먹고 싶대”.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지고 있을 때, 아빠는 함께 가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과수원으로 홀로 수박을 따러 가셨다. 1시간쯤 지났을까. 아빠는 가슴에 수박 한 덩이를 품은 채로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과수원 입구에서 줄에 걸려 넘어지셨다고 했다.
가족 모두 처음에는 그냥 단순 타박상이라고 생각했다. 부기도 없었고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밤에 시내 병원 응급실로 가서 엑스레이 촬영 등을 했다. 아뿔싸. 아빠의 무릎뼈에 금이 가 있었다. 과수원 일을 하시면서도 평생 골절 한번 안 당하셨던 아빠였는데 수박 한 덩이 때문에 한동안 깁스를 하고 목발과 친구가 되어야 했다.
아빠가 깁스를 하고 2주일 후 태풍 나리가 제주도에 물폭탄을 퍼부었다. 사방이 바다인 섬이라고 물이 잘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주도도 가끔 물에 잠긴다. 특히 우리 집은 저지대에 있어서 내가 어릴 적에도 몇 번씩이나 집 현관에 물이 차고는 했다. 다행히 아빠가 집 주변으로 물꼬를 잘 튼 덕에 집 안까지는 물이 차지 않았지만.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깁스 때문에 아빠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고, 오빠 또한 유럽 출장으로 집을 비운 터라 물꼬를 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집은 무방비 상태로 시간당 100㎜ 안팎으로 쏟아진 폭우에 그대로 노출됐다. 순식간에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닥쳤다. 움직임에 제약이 있던 아빠는 부랴부랴 다락방으로 몸을 피했고 동네 아저씨들이 엄마와 올케, 동생과 어린 조카들을 구하러 왔다. 창문 사이로 아이들을 대피시키는데 엄마가 세살 조카를 업으려는 찰나, 물살에 밀려 그만 조카를 놓치고 말았다. 당시 임신 8개월이던 만삭의 올케는 그때 안방 창문을 번개처럼 넘어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엄마의 힘은 참 위대하다.)
아빠는 다락방에, 엄마와 올케 등은 고지대에 있는 이웃집에 피신해 있는 사이 아저씨들은 돌담을 무너뜨려 물꼬를 텄다. 고작 30여분이었지만, 후에 동생이 말한 것처럼 “3시간 같던 시간”이었다. 물난리로 오빠 차는 그대로 침수됐고 가구도 다 젖었다. 아빠와 엄마는 난생처음 수재민이 돼 구호물품도 받았더랬다. 동생은 대학교에서 특별 장학금까지 받았고. 아빠의 다리가 괜찮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부모님은 우리 과수원 안에 있는 남의 집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던 탓에 동티가 났다거나, 우리 집 바로 옆에 짓던 조립식 원룸(일종의 별채)에 싱크대를 설치하려 할 때 방향이 어긋나 부엌신을 노하게 한 게 화근이었을 것이라는 아주 ‘예스런’ 해석을 내렸다. 사실 집 공사를 시작하고 올케와 동생이 어처구니없는 차사고 등을 겪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꺼림칙했는지 부모님은 원룸 내부 공사를 중단했고, 무덤 이장도 없던 일로 했다. 진짜 동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엌신이 노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중심은 수박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아주 조그만 일이 훗날 일어날 대형 사건의 화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수박 한 덩이가 재난의 씨앗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난 수박이 좋다. 아니, 그때 뱃속에서 수박을 먹고 싶어 했던 우리 아들이 좋아한다.
Y기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