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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2 20:44 수정 : 2017.04.12 23:49

가수 이상은. Y기자는 한때 가수 이상은으로 불렸다. 한겨레자료사진

[ESC] Y기자, 내 인생은 시트콤

가수 이상은. Y기자는 한때 가수 이상은으로 불렸다. 한겨레자료사진
바야흐로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도내 1학년 반장들을 대상으로 간부 수련회가 열렸다. 1박2일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같은 조 구성원에 대한 생각을 쪽지에 쓰는 차례가 있었다. 한 남학생이 나에 대해 쓴 쪽지는 이랬다. “나보다 키가 커서 기분 나쁜 아이. 만약 진짜 남자라면 여자들이 줄을 꽤 설 텐데….” 또 다른 녀석은 이렇게도 썼다. “남장여자로의 모습으로 멋있다.”

그렇다. 난 ‘톰보이’(중성적인 매력의 여성)였다. 고등학교 때 나의 키는 172㎝(지금은 173.6㎝). 게다가 머리 스타일은 쇼트커트였다. 머리 손질이 귀찮아서 초등학교 때부터 머리를 기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 그리고 농구화까지…. 수학여행 때 반 친구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짝만 바꿔가며 10번 넘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론 그 사진 때문에 친구는 엄마에게 “너 언제 남자친구를 만들었냐”며 취조를 당해야 했지만 말이다.

목욕탕에 갔을 때는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 반드시 성별을 확인했다. “저 여자인데요” 하면 괜히 “여자처럼 하고 다녀야지” 하고 타박을 했다.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길 가던 아주머니가 대뜸 붙잡고 “너 남자니? 여자니?” 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 도대체 왜 그게 궁금하셨을까. 어떤 날은 유심히 나를 쳐다보던 액세서리 가게 여자 점원이 나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어머, 꽃미남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남으로는 안 봤으니 웃어야 하나, 아님 울어야 하나.

‘꽃미남형’ 여자 선배였으니 남녀공학인데도 학교에서 나름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꽤 있었다. 후배 반 옆 복도를 지나가면 “선배님 멋있어요~”라거나 “○○가 선배님 좋아한대요!”라고 외쳤다. 편지도 받고 꽃도 받고 그랬다. 하긴 같은 반 친구들조차 “네가 남자였다면 당장 사귀었을 거야”라는 말을 종종 했으니까. 주위의 알 듯 모를 듯 한 은근한 시선을 나름 즐기기도 했던 듯하다.

압권은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청재킷 차림에 군화 비슷한 신발을 신고 모자를 꾹 눌러쓴 채 약간 반항기 있는 모습으로 참석했는데 후에 들으니 동기 녀석들 사이에서 의견이 꽤 분분했단다. “쟤가 여자일까, 남자일까?” 남자로 본 동기들이 많았다고 하니 진짜 남자 같기는 했었나 보다. 최근에 연락이 닿은 한 여자 동창은 “네가 남자인 줄 알고 너 같은 애랑 사귀겠다고까지 생각했다니까”라며 웃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련의 사건을 겪다가 20대부터는 계속 머리를 길렀다. 변신의 이유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뒤늦게 발현됐을 수도 있고 ‘꽃미남’ 평가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머리 모양이 달라지니 자연스레 옷차림에도 변화가 왔다. 나의 파격적인 변화에 오랜만에 중고교 친구들을 만나면 ‘뜨악’하기는 했다. 고교 때와는 너무 다르니 성형 의혹까지 받았다. 연예인들이 과거 사진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면 나는 경험상 “성형 안 했을 수도 있는데…”라고 옹호한다. 생김새로, 옷차림으로 사람의 성별을 가르고 평가하는 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다.

여전히 나의 머리는 길다. 가끔 머리를 쇼트커트로 자르고 싶지만 꾹 참는다. ‘꽃중년’으로 오해받을까봐. 가끔씩 거울에 비친 내 민낯을 볼 때마다 오빠 얼굴이 떠오르니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Y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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