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미경의 그림나무
(16) 그림 선물
한 달여 전 이 지면에 ‘당신 인생의 꽃을 그려드립니다’ 이벤트를 하겠다고 알렸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꽃 이야기를 써 보내면, 2명을 뽑아 그려주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스무 명 남짓 사연을 보내왔다. 그냥 휘리릭 넘기기엔 소중한 사연들이 많아 뽑는 데 애를 먹었다.
가슴 훈훈해지는 사연을 담은 꽃 2개를 뽑았다.
석류나무꽃.
어린 시절, 같은 학년의 부잣집 남자애 집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창고를 개조해 양철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뚜막, 그걸 딛고 올라가면 어른 두어 명 누울 수 있는 쪽방에서 살았다. 학교만 가면 주인집 아들이 ‘○○은 우리 집 창고에서 산다’고 놀려댔다. 그 친구를 흠씬 때려주고 선생님께 크게 혼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아버지가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안고 오셨다. 양철 여닫이문 앞에 손바닥만한 화단을 만들어 그 나무를 심고, 그 옆에 채송화도 심으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이 석류나무가 네 키보다 크면 우리 집으로 이사 갈 것”이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매일 밤 자면서 기도했다. “내 키는 이대로 크지 않고 석류나무만 어서 쑥쑥~! 자라게 해”달라고….(임○○/부산시 수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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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나무꽃, 2017년 8월, 펜&수채,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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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눌 수 있는 아주 소박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이다
‘당신만의 꽃’을 그려주는
그런 화가이고 싶다 접시꽃을 그릇꽃으로 기억하고, 그 추억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너무 사랑스러워 뽑았다. 아 그런데 그리러 나갔더니, 동네 여기저기 길쭉한 키를 자랑하며 피어 있던 접시꽃이 거의 다 져버렸다. 문득 한 달여 전 인왕산 성곽을 배경으로 피어 있던 접시꽃이 생각나 올라갔다. 접시꽃만 그리려다가, 남산까지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광에 홀려 배경까지 그려 넣었다. 그리는 와중에 보초 서던 군인들이 잡초를 제거하면서 접시꽃을 잘라버려, 아쉽지만 마무리는 사진을 보며 했다. 하여간 꽃만 그리려다 풍경을 넣은 꽃 그림을 처음 그려보는 뜻밖의 소득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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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꽃을 그려드립니다’에 신청해준 꽃들을 그리느라 무더위를 잊었다. ‘당신만의 꽃을 그려 선물하는 화가’가 내 이름 앞에 붙어 다녀도 정말 좋겠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열심히 핀다. 접시꽃, 2017년 8월, 펜&수채, 24.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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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꽃, 2017년 8월, 펜&수채,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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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당신 인생의 꽃을 드려드립니다’ 이벤트 때 그려 선물한 꽃 그림들이다. 고구마꽃, 2015년 8월, 펜&수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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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비름채송화, 2015년 8월, 펜&수채,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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