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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07 09:55 수정 : 2017.10.19 13:55

Weconomy | 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그래픽_김지야
경제학자들의 눈길을 빠르게 사로잡는 단어를 꼽으라면 ‘시장 개입’입니다. 균형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은 외부적 개입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균형이란 다양한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주체들의 행동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 뒤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균형에 가해지는 외부적 개입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가격과 임금에 손을 대거나, 물건을 사고팔고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계약에 간섭하거나, 경쟁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조정하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드러냅니다. 한편으로는 비판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환영하기도 합니다. 시장에 대한 개입은 경제학자들에게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시장 개입을 비판하지만, 이 때문에 먹고 살 수 있는 패러독스가 숨어 있습니다.

업무 성과가 낮은 이를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한 박근혜 정부의 지침이 폐기되었습니다. 쉬운 해고 지침이 정말 해고를 쉽게 한 것이냐는 점에 논쟁이 있지만, 쉬운 해고 지침 폐기를 노동계는 반기고 있고, 기업 측과 시장주의자들은 난색을 보입니다. 정부는 파견 고용을 하고 있는 제빵사를 직접 고용하라고 파리바게뜨에 명령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시장의 반응은 비슷합니다. 시장을 자생적 질서로 이해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식의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분노의 폭은 깊습니다.

시장과 정부는 반대말이 아니다

시장은 자생적 질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제도와 정부 정책이 뒤섞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유한책임제도의 보호를 받습니다. 기업의 주주는 채무에 대해 직접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시장이 시장실패를 내포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이지만, 자생적 질서로의 시장을 주장하는 이가 유한책임제도를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실상 시장경제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자유로운 계약을 허락하지만, 동시에 유한책임제도를 통해 고용주를 보호하고, 노동법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합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써서 표현하면, 시장경제란 제도와 정책이 고용주와 노동자의 참여조건과 책임상한조건을 설정하고, 이들 사이의 거래와 계약이 자발적으로 유인양립조건을 만족하는 세상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참여조건과 책임상한조건이라 할 수 있는 경기장 마련과 경기에 필요한 보호장비 준비입니다.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기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장과 정부는 언제나 반대말이 아닙니다. 정부는 시장을 꾸며주는 형용사이기도 합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자기의 형편에 맞는 보호장비를 갖추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시장에서 가격과 임금을 두고 줄다리기를 펼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결과가 시장균형입니다.

경제학자들의 비판탄력성

쉬운 해고 정책의 폐지가 옳은가 그른가는 시장균형을 깨뜨리는가의 문제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쉬운 해고를 허용하는 것이 시장 친화적이고, 쉬운 해고를 금지하는 것이 시장 개입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시장균형은 정부의 개입이 없는 진공 상황에서 펼쳐지는 결과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고 조건에 대한 결정은 시장경제 경기를 펼치기 위한 보호장비 준비 과정이고, 균형을 향한 시장참여자들의 협상 과정 중 일부입니다.

짐작건대, 다수의 경제학자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격과 임금 통제, 거래와 고용 간섭, 경쟁의 룰 조정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높은 연구탄력성과 비판탄력성은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서 할 말이 없던 학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칼럼을 쓰기 시작하고, 현실 참여적 연구자로 거듭날 이유입니다.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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