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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6 11:33 수정 : 2017.11.06 13:45

그래픽_김지야

Weconomy | 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그래픽_김지야

#1 소대 A는 적의 동쪽을 맞서고 있고, 소대 B는 적의 서쪽을 맞서고 있다. 주어진 병력과 화력으로는 오직 같은 시간에 협공해야만 적군을 물리치고 이곳을 살아나갈 수 있다. 문제는 통신이 두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A 소대장은 내일 오전 7시에 전투를 시작하자는 쪽지를 써서 병사에게 건넸다. 만약 적에게 붙잡히면 쪽지를 파기하고 자결할 것을 명령했다. 쪽지를 건네받은 병사는 무사히 적진을 통과해서 B소대장에게 전달했다. 그렇다면 A소대장은 다음 날 전투를 시작할 수 있을까. 병사가 적에게 잡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A소대장은 망설인다.

#2 B소대장은 공격 계획을 전달받았다는 쪽지를 썼다. 다시 병사에게 적진을 통과해 A소대장에게 전달할 것을 명령했다. 다행히 병사는 임무를 수행해냈다. 그렇다면 B소대장은 다음 날 전투를 시작할 수 있을까. 만약 병사가 적에게 잡혔다면, A소대장은 B소대장이 쪽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A소대장이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예측하는 B소대장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3 B소대장의 망설임을 예측하는 A소대장은 다시 병사를 통해 쪽지를 보냈고, B소대장은 쪽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A소대장은 다음 날 전투를 시작할 수 있을까. 달라진 것은 없다. 병사가 적에게 잡혔다면, B소대장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A소대장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A소대장의 최초 쪽지를 B소대장이 확인했고, 다시 그 사실을 A소대장이 확인했다. 게다가 A소대장은 확인했다는 사실을 B소대장에게 다시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A소대장은 다음 날 전투를 시작하지 못한다.

의심은 확실성만큼 강력할까

경제학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대답은 의심이어야 합니다. 경제학자들은 누구보다 의심의 무서움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작은 불꽃이 큰불을 일으키는 것을 소방관이 이해하는 것처럼, 작은 의심이 큰 의심을 만드는 것을 경제학자는 이해합니다. 그래서 경제학적 분석이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의심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게임이론 수업에서 등장합니다. 경제학적 분석의 근간에는 ‘공통지식’(Common Knowledge)이라 불리는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통으로 무엇을 알고 있다고 말할 때, 이는 나도 알고 있고 당신도 알고 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당신이 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당신이 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이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는데,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공통지식이라는 것은 이처럼 촘촘하게 꼬리에 꼬리를 잇는 상호 인식의 과정입니다.

공통지식에 대한 작은 의심은 합리적 사유와 분석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서로의 쪽지를 확인하면 약속한 시각에 적을 공격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작은 의심이 들어서는 순간, 나의 망설임 때문에 상대방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나의 망설임은 합리적 추론을 거쳐 공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아주 작은 의심도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촘촘한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경제학 교수들이 첫 수업에서부터 공통지식의 의미를 강조해서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공통지식을 가정하지 않으면, 전략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한 발짝도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통지식에 대한 의심은 불확실성과 다르고, 비밀 정보와도 다릅니다. 경제학 분석은 불확실성과 비밀 정보를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실상 경제학은 불확실성 하에서 추정하고, 비밀 정보를 추론하여 정책 효과를 분석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비밀 정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공통지식이어야 합니다.

공통지식에 대한 의심은 분석 과정과 연구 결과에 질문을 제기하거나 회의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실상 공통지식은 셀 수 없이 많은 질문과 회의를 통과해서 만들어지고, 공통지식이 의심받지 않을 때만 새로운 질문과 회의가 가능하여 지적 진보를 이루어 냅니다. 하버드대학에서 과학사를 가르치는 나오미 오레스케스 교수는 과학을 신뢰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거치는 과학적 방법론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집적된 집단적 지성이 가진 권위 때문입니다. 과학이란 질문과 회의를 거쳐 공통지식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의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알리 벨쉬는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CNN의 수석 기자를 거쳐, 현재 NBC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TED에서 가짜 뉴스에 대해 강의를 하며, 다음과 같은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가 트위터를 통해 긴급 뉴스를 전하면, 즉각적으로 얻는 반응은 “출처가 어디냐?”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저널리즘 학생인 줄 아세요. 나는 24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주요 언론의 모든 보도에 대해 팩트체크를 함께 제공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수의 강의에 대해 모든 사실관계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독점 시장에서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독점 가격이 낳는 사회적 후생 손실을 공부해 봅시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학생들이 독점 시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교과서에 존재하는지, 다른 대학에서도 가격 결정과 후생 효과를 가르친다는 증거가 있는지를 요구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기초적인 사실을 증명하는데 시간을 쏟다 보니,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이에 관해 토론해야 할 시간이 부족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알리 벨쉬는 최근 언론이 팩트첵크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평판 메커니즘이 비교적 잘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베테랑 기자가 출처도 없는 가짜 뉴스를 말한다면,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평판을 하루아침에 잃습니다. 일자리도 잃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시장경제는 가짜와 사이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기본적인 사실관계, 공통지식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심의 반대말은 확신이라기보다 평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심하게 하여라

‘고가시계 수수 건 등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므로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 주는 선에서 활용하시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측근이 이인규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에게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논두렁 시계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에스비에스(SBS)는 권양숙 여사가 선물 받은 억대의 고가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를 하였고, 열흘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하였습니다. 그들은 한심하게도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작은 의심은 한 사람이 평생 쌓아온 평판을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싶습니까.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지식을 의심하게 하십시오.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선거와 여론을 통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치사회 체제입니다. 이런 체제의 가능성 대한 상호 인식에 작은 의심의 균열을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고작 댓글 정도로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이 가능하냐”고 질문하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시작하면 됩니다. 의심은 의심을 낳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믿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좀 더 사악할 수 있다면, 비밀 정보를 이용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민간인들을 고용해 전방위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서도록 하면 됩니다. 공정하게 수사하는 이들을 쫓아내고, 이웃과 더불어 살던 이를 물대포로 쓰러뜨리고,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역사 교육마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언론은 침묵하고 공범자가 되고 싶다고 꼬리를 흔들 것입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움츠러들 것입니다. 국무회의에서조차 토론이 사라지고, 모든 영역에서 민주적 절차가 무너질 것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정보기관은 국가정보원이라기보다 국민의심원이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안전보장을 위해 비밀 정보를 다루는 곳이어야 하는데,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 일을 주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속속히 밝혀지고 있는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여느 정치 스캔들처럼만 받아들여야 합니까.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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