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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2 15:22 수정 : 2018.09.12 15:28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Weconomy | 김재수의 갑을경제학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건강한 이와 심장 질환을 가진 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녹음한 후, 경력이 짧은 의사 그룹과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의사 그룹에게 들려줍니다. 놀랍게도 짧은 경력을 가진 의사 그룹이 심장 질환을 더 잘 찾아냅니다. 한 때, FDA는 심장수술 전문의에게 약물방출 스텐트의 안전성을 경고했습니다. 경력이 많은 의사일수록 경고받은 제품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가 되면 자신의 경험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합니까.

경제학의 가장 기초 개념인 기회비용을 묻는 교과서 질문을 전미경제학회에 참석한 경제학 박사 199명에게 물었습니다. 사지선다 문제에서 정답을 맞춘 이는 21.6%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경제학 개론 수업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120명 중에서도, 22.5%만 정답을 말했습니다. 전문가가 되면, 기초 개념을 잊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관련연구①)

전문가는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박사공부를 설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되는 비유 하나는 이렇습니다. 파리학 전공자가 파리 ‘뒷’다리 발톱의 때를 연구합니다. ‘앞’다리 발톱의 때를 연구하는 동료와는 전공용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30’년 된 발톱 때를 연구하는 이는 ‘10’년 된 발톱 때를 연구하는 동료와 연구방법론의 차이로 갈등을 겪습니다.

스페셜리스트는 선택적 주의집중(selective attention)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신이 잘 아는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정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많이 알려진 실험 하나는 고릴라 실험입니다. 흰색 옷을 입은 세명과 검정색 옷을 입은 세명이 농구공을 서로에게 패스합니다. 실험 참가자는 흰색 옷을 입은 이들이 몇 번 패스를 하는지 맞추어야 합니다. 이 때, 고릴라 옷을 입은 이가 등장해서 무대를 지나가고, 중간에 서서 가슴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패스 횟수를 세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경제학자는 선택적 주의집중의 문제에서 더욱 자유롭지 못합니다. 경제학의 모든 논문은 사실상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과학 연구가 피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정책 효과에 대해 평가할 때, 세테리스 파리부스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피노자와 징갈레스 교수는 이에 대해 유쾌한 실증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관련연구②)

한국경제가 당면한 일자리, 부동산, 재벌의 경제력 집중, 가계부채, 양극화 같은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혀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종합적 대책은 각각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대안들의 총합이 아니라, 상충관계에 있거나 상호보완적인 문제의 관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각각의 문제에만 시각을 고정한다면, 최선의 종합적 대책이라 하여도 불완전한 대안들의 묶음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스페셜리스트로 훈련받은 경제학자가 거의 모든 정책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찾아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입니까.

이노센티브(InnoCentive)라는 회사는 문제해결을 대신하는 회사입니다. 연구, 개발의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문제를 외부에 공개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이들에게 상금을 줍니다. 2001-2016년 사이 대략 1,600개의 문제를 공개하였고, 4천만 달러 이상의 상금을 해결사들에게 수여했습니다. 하버드 경영대 라카니 교수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제시된 문제와 거리가 먼 전공을 한 이들이 가까운 전공을 한 이들보다 약 세 배 정도 높은 해결 능력을 보여줍니다. (관련연구③) 선택적 주의집중에 빠진 전문가들에 비해, 비전문가들이 더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통해 창의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스페셜리스트 전문가들은 특정 이익을 대변할 인센티브를 가지기 쉽습니다. 제너럴리스트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면, 스페셜리스트는 자신의 세부 전공을 뒷밤침해 주는 특수 이익의 이해관계를 거부하기 쉽지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핵공학자를 찾기 쉽지 않고, 금융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재무학과 교수를 찾기 쉽지 않은 이유입니까. 기업 이사회 임원으로 일하는 경영학 교수들이 CEO의 초고액 연봉에 대해서 우호적인 이유입니까. (관련연구④)

전문가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저는 경력 많은 의사를 찾아갑니다. 평판이 좋은 전문가들의 글과 책을 읽습니다. 다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진리를 잊지 않습니다. 전문가주의는 (1)기초를 잊거나, (2)다른 관점을 갖지 못하거나, (3)서로 다른 분야의 상호보완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4)특수 이익관계에 종속되기 쉽다는 비용을 야기합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때, 이러한 비용을 감안해야 합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주의에 빠진 증상을 찾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문가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을 잃은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때입니다.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Annual Review of Economics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경제학 문헌 연구를 소개하는 권위있는 논문집입니다. 한 주제를 잘 꿰고 있는 진정한 전문가가 써내는 논문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논문이든 하나를 선택해서 읽어 보십시오.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얼마나 엎치락뒤치락 하며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교수

관련연구
Paul J. Ferraro, Laura O. Taylor, “Do economists recognize an opportunity cost when they see one? A dismal performance from the dismal science”, The B. E. Journal of Economic Analysis & Policy (2005), 4(1): Article 7.3): 636~642.
Paola Sapienza, Luigi Zingale, “Economic experts versus average Americans”, American Economic Review (2013), 103(3): 636~642.
Karim R. Lakhani, Lars Bo Jeppesen, “Getting unusual suspects to solve R&D puzzles”, Havard Business Review (2007), May
Luigi Zingales, “Preventing Economist’s capture”, Preventing Regulatory Capture: Special Interest Influence and How to Limit it, eds. Daniel Carpenter and David Mos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1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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