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2.03 14:51 수정 : 2018.12.03 14:56

그래픽_김지야

Weconomy | 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그래픽_김지야
우리 학과는 3대의 프린터-복합기를 대여하고 있습니다. 방학 중에는 한 대로 충분하지만, 임대 기간이 최소 3년이기에 3대에 대한 임대료를 모두 지불합니다. 토너는 필요할 때마다 구매합니다. 학기 중에는 매달 10개씩 구매하지만, 방학 중에는 하나를 구매합니다. 최근 대여 업체는 토너 사용에 대한 새로운 계약 방식을 알려 왔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는 방식 대신, 프린터-복합기처럼 연단위로 대여하는 방식입니다. 사용이 거의 없는 방학에도 매달 같은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경제학자인 학과장은 토너 사용에 따른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과의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학교 전체에 난리가 났습니다. 안 그래도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학교 쪽은 토너 사용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컬러 사용 금지, 학기 중 토너 사용 열 개에서 다섯 개로 감축, 교수 당 프린트 월 1000페이지로 제한, 시험 문제지 페이지 축소, 온라인 시험 확대 등입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학교가 겪는 재정난도 사실이고, 토너 사용 비용의 증가도 사실이지만, 토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지출의 1∼2% 정도에 불과합니다. 왜 더 큰 지출 항목에서의 비용절감을 고려하지 않느냐는 지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프린터-복합기의 대여 수를 3대에서 2대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일까, 어쩔 수 없는 이유일까

비유는 경제학의 수학 모델처럼 단순화의 문제점을 피할 수 없지만, 논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최근 강사법에 대한 논쟁을 토너에 대한 비유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대학 시간강사를 토너로 비유한 것을 두고, 어떤 분들은 경박하고 배려심 없는 비유라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이 비유는 해고 강사인 채효정 선생님의 것입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5년6개월을 강의하고 해고됐다. 5년 넘게 일했지만 장기근속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유는 4개월 마다 계약을 하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4개월에 한 번 교체하는 비품이 뭐가 있을까. 프린터 토너 정도일까. 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토너는 단순화라기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비유입니까.

경제학은 ‘균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사를 이해합니다. 균형의 의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와 비슷합니다. 많은 이들은 정규교원과 시간강사의 하늘과 땅 같은 대우 차이를 두고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교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의 관심은 정의의 여부가 아니라, 다른 것에 있습니다. 하나는 그럴 만한 이유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불의의 교정이 균형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어떤 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런 식의 사유방식은 많은 경우 큰 도움을 줍니다. 하나의 불의를 교정하지만 또 하나의 불의를 낳을 수 있고, 의도하지 않은 더 큰 불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도와줍니다. 경제학은 불의마저도 최적의 조합을 계산하는 학문입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저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유방식을 항상 훈련하다 보니, 종종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실수를 합니다. 경제학적 사유방식을 마치 경제학적 진리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강사법을 둘러싼 논쟁은 국제무역과 노동착취공장에 대한 논쟁과 닮았습니다. 노동인권활동가는 저개발국의 아동 노동, 위험한 업무 환경, 고용주의 폭력,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시간, 적절한 휴식과 화장실 사용의 금지 등에 대해 비판합니다. 반면 다수 경제학자의 모범 답안은 사뭇 다릅니다. 노동착취공장의 상황이 매우 나빠 보이지만 실상 이들에게 더 나은 대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노동환경을 개선하면 어떤 이들은 직장을 잃고 더 나쁜 환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노동착취공장의 단계를 거쳐서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노동환경 개선은 경제발전의 열매로 얻어집니다. 즉,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이러한 설명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 경제발전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노동권을 포기해야 합니까. 직업 선택의 자유,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노동환경,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부당한 해고로부터의 보호도 경제발전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정도의 진보는 실업을 크게 야기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합니다. 대량실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선진국 수준의 임금과 근로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것들만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경제발전을 조금이라도 늦추지 않기 위해서, 실업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 노동착취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강사법 반대에서도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대학의 재정난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서, 강사들의 해고로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강사법에 반대하였습니다.

강사법, 대량해고 사태로 이어질까

지난주 목요일,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강사법이 지불할 ‘대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얼마만큼의 대가인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불투명합니다. 대학 쪽은 강사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말만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동안 대학이 시간강사를 많이 쓰고 박대했던 ‘그럴 만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학이 상당한 수요독점력을 지니고 있고, 값싸게 강사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분보장과 계약 기간 연장 정도의 내용을 담은 강사법이 단번에 대학의 수요독점력을 뺐고, 강사 사용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지 의문입니다. 강사 대량해고 사태가 나타나겠습니까.

대학이 합리적인 최적화 결정만 해준다면 대량해고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토너 사용 비용 증가를 토너 및 프린트 수의 급격한 제한으로만 해결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전체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여러 항목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강사법이 야기하는 비용 상승을 강사에게만 전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대학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져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등록금 상승을 통한 비용 분담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는 제약조건 설정은 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울한 전망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명을 만드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강사 휴게실에서는 어느 날 커피믹스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 한 교수는 커피믹스 치운 것이 무슨 큰일이냐고 말하며, 커피믹스 타령이나 하는 강사들을 꾸짖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약조건을 설정하는 의사결정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합리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근시안적이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강사들을 해고하지 않겠습니까. 강사법을 우려해야 합니까. 대학 쪽의 선택을 우려해야 합니까.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교수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Weconomy] 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