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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6 18:48 수정 : 2006.10.26 18:48

25일 파리 시내에서 수백명의 시위자들이 빈곤층 생활개선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국회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10~11월 파리 교외폭동 이후 정부는 빈곤층 삶의 개선을 약속했으나 이들의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파리/EPA 연합

파리취급하다 불탄 파리 지금도 진행형

(상) 이슬람포비아
(중) 결집하는 무슬림
(하) 다시 찾은 폭동현장

지난해 10월27일 프랑스 파리 교외 클리시-수-부아에서 부나 트라외게와 졔드 베나라는 소년이 감전사했다. 축구를 한 뒤 라마단에 참여하러 집으로 뛰어가던 그들을 경찰은 범죄자로 오인해 추적했고, 놀란 아이들은 경찰을 피해 전봇대에 올라갔다 변을 당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3일 뒤부터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은 200개 도시로 번져 3주일이나 계속됐다. 1만여 대의 차량이 파괴되고 2억5천만유로(약3천억원)의 재산피해를 낳았다. 프랑스 정부는 68혁명 때도 하지 않았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5000명을 체포했다. 그 가운데 600명 정도를 수감한 뒤에야 치안을 회복할 수 있었다.

1년전 오늘에서 교훈 못찾아 “변한게 없다”
순환도로에 막힌 ‘경계인’ 정치적 행동 시작

그 후 1년, 프랑스는 얼마나 변했나? <르피가로>가 입수한 정보기관의 비밀보고서는 “1년 전 교외폭동을 낳았던 조건이 해소되지 않았으며, 지난해 폭동의 발화지인 클리시-수-부아의 분위기는 긴장돼 있다”고 평가했다. 25일에는 폭동 뒤 만들어진 교외지역 청소년 단체 ‘자유평등박애연합(AC-Le Feu)’이 파리 시내에서 가두 시위를 벌이고, 일자리 창출·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는 청원을 상·하원에 전달했다. 이 단체 공동 설립자인 사미르 미히는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며 소요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장 피에르 듀부아 프랑스인권연맹 총재는 “빈곤층을 위한 마샬플랜이 필요한 상황인데 현정부는 부모들의 교육책임만 강조하고 실질적인 지원금은 오히려 줄였다”고 비판하고, 내년 선거에서 이 문제가 큰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소년 비행문제 전문가인 세바스티앙 로슈 그르노블대 교수도 정부가 “경찰의 차별행위에 대한 대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 정도로 둔감한 것을 보면 사태를 잊고자 할 뿐, 그것에서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는 지난해 교외폭동이 계급·이민·청소년 비행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이어서 쉽게 대책을 찾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민 문제 전문가 파트릭 웨일 파리1대학 교수는 당시 사태는 프랑스 평균(10%대)보다 훨씬 높은 민감지역의 실업률(30~40%)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경찰의 차별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이 지역 젊은이들에 대한 도발적 태도, 젊은이들의 무정부주의적 행태가 결합해서 일어난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프랑스에서는 79년 이래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교외지역에서 차량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지난해는 그 기간이나 정도에서 비교가 안 됐다. “상황이 심각해진 이유는 사회적 위기 탓이다. 교외 지역의 고용·주택·교육 등 열악한 사회적 조건이 수십년 동안 방치돼왔다” 고 듀부아 총재는 지적한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음주운전하듯 정책이 급회전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던 시한폭탄이 터진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74년 이후 프랑스는 이민금지정책을 취해 가족 재결합 이외의 모든 이민을 막았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다르다.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들어와 건설업체나 식당 등 육체노동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저임금의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고용한다. 이들은 자신을 숨겨줄 수 있는 친지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까 이민자 밀집지역인 교외지역으로 몰리게 된다. 교외지역 주택수요는 늘어나지만 해당 자치단체는 세수 부족으로 공공주택에 투자할 엄두를 못 낸다. 주택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때문에 지난해 부유지역에서 빈곤지역의 공공정책기금을 지원하자는 법안이 제안됐지만 부유지역의 거부로 물거품이 됐다.

결국 게토가 돼버린 교외지역 출신 젊은이들은 온갖 차별에 시달린다. “그들의 주소, 그들의 말투 자체가 차별의 근거가 된다. 단 두 마디만 하면 그들의 출신을 알 수 있어 경찰의 과도한 검문검색을 받는 것은 물론 취업까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교외 밖 세계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들은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커다란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우리 세상’이라고 주장하는 아주 좁은 세상에 갇혀있는 수인들이다. 그들의 삶은 파리와 교외를 연결하는 순환도로 선에서 멈춰 서 있다. 그들과 파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듀부아 총재는 당시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5킬로미터 밖에 있는 부유층 지역 대신 자신들의 가난한 이웃의 차를 불태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물론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경찰이다. “경찰은 빈곤지역 경찰업무에 대한 숙고가 없었다. 당시 경찰은 무력을 행사하거나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지역주민들과 단절돼 있기 때문에 경찰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았다.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경찰은 최루탄을 모스크에 발사하는 잘못을 또 저지른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전국적 소요확산을 불렀다”고 로슈 교수는 말한다.

듀부아는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민감지역 출신 경찰제도를 없앴다. 그러나 이것은 제대로 된 대책이 못된다. 과거의 경찰도 결코 사랑받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대로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찰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지역민들은 그들을 마치 점령군처럼 느낀다”고 말한다.

정부는 지난해 상황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지만, 교외지역 젊은이들의 정치적 각성이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3월 파리 시내에서 열린 최초 고용보장제 반대 시위에 참여한 데 이어 25일 파리에서 자체 시위를 벌이며 선거에서 이민자들의 힘을 보여주자고 촉구했다. 이제 변화는 시작됐다.

파리/권태선 순회특파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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