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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28일 사진전을 여는 자리에서 “학교의 잘못은 체벌, 두발규제 등 교육현장에서 학생의 인권을 사라지게 한 것”이라며 “동료의원들에게 학생인권 침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사진전을 준비했다”고 개최 이유를 밝혔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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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최순영 의원의 편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법학전문대학원 지지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순영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그동안 사법개혁을 위해 많은 애를 쓰셨으며, 특히 법률가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법학교육의 개혁과 법률가 양성과정의 개선에 관한 논의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현재의 문제에 대한 충분한 지적과 공감이 형성되었던 반면에 그 대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렇다 할 분명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 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여러분들처럼 법학전문대학원, 즉 법학전문대학원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분들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제 의견을 보내드리는 것을 통해서 보다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 구조는 여러 측면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첫째,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는 법학교육개혁의 일환이라기보다 오히려 법학교육을 더욱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양한 법률가 양성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기득권의 해체가 필요한데 법학전문대학원은 오히려 그 기득권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제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금까지의 논의는 사회적 논의의 장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폭넓은 이해와 동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볼 때, 저는 이번에 한겨레와 함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법학교육 및 법률가 양성과정의 개혁과 관련하여 사회적인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소식에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음에도 이를 다행으로 여기며 여러분의 고견을 기대하게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동안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개위나 사개추위에서 진행되어왔던 사법개혁 논의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수많은 억측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적지 않게 안타까워했던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말씀들이 법학교육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공론의 출발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는 교육구조를 왜곡할 것입니다. (1) 교육자들부터 반성을 해야 합니다. 2004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일본이 올해 처음으로 新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선례를 보면서 그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가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본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한 항간의 여러 논의를 보면서 과연 일본이 성공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 어떤 제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따져보는 행태가 적절한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 논쟁 속에서 진실로 우리가 따져 보아야할 무엇이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법학전문대학원이 개교한 이래, 일본 법학교육과정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으로 일하고 계시는 김선수 변호사께서 지난 10월 31일 청와대 사이트에 올린 글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즉, 일본이 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시행한 이후 “법학 교육수준이 제고되고 교육과목이 다양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강의는 토론 등 쌍방향 형식을 취하여 학생들이 예습을 하지 않으면 강의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등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법학교육과정이 개선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경북대 김창록 교수는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 안상수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거의 같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 법학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전문과목이 도입되고, 리걸 클리닉 · 엑스턴쉽 · 모의재판 등 임상법학교육이 도입되고”, “교수들 또한 사회인을 포함한 다양한 학생들로부터 엄격한 평가를 받으면서, 매주 강의에 관한 교수회의를 열고, 방대한 양의 법률문헌과 판례를 갖춘 인터넷 교육 연구지원시스템을 개발하고, 새로운 교재와 법학전문서를 출간”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들께서 일본법학교육의 변화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매년 때만 되면 각 대학 교정에 걸리는 사법고시 합격생 축하 현수막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폐인처럼 고시원에 틀어박혀 사회와는 담을 쌓은 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각 대학 교정에는 사법고시 2차 합격생이 발표될 즈음이면 자교 출신 합격자들의 이름이 박혀있는 현수막이 내걸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교 법학과의 자랑, 더 나가서는 그 대학의 자랑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수막을 볼 때마다 과연 저 현수막이 교정에 나부끼는 것이 누구의 자랑이며 누구를 축하하려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시는 모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과연 그 현수막에 걸린 학생들 중에서 정상적인 4년 간의 대학교육만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더 직설적으로 묻자면 우리 법학 교수님들 중 내가 가르쳐서 학생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될까요? 한국 법학교육의 메카가 신림동 고시원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사법고시에 뜻을 둔 많은 학생들이 학교의 정규교과과정에 전념하기 보다는 일찌감치 사설 고시학원으로 달려가 수험준비에 매몰되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정상적인 법학교육과정을 통해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일본의 법학전문대학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람직하고 다양한 변화들은 실상 법학전문대학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 아닙니다. 당연히 대학교육과정에서 그렇게 되었어야 할 일들이었고, 법학교육 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의 방식이 그렇게 되었어야 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러한 교육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갖다 바치는 존재로 전락했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미명 하에 기초교육은 황폐화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대학은 지성인의 전당이라기보다는 학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순한 간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제도권 교육 안에서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는 판단을 하게 된 많은 학생들이 미련 없이 학교를 등지고 신림동 고시원에 안착합니다. 학교는 졸업장을 위한 근거일 뿐, 그들이 원하는 사법고시의 합격에 필요한 자원은 결국 사설 학원의 강사들이 제공하게 됩니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청운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고시생의 길을 감수합니다. 법전과 교과서와 학원교재에 파묻혀 가장 찬란히 빛나야할 청춘의 한 때를 폐인처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외람되게도 법학전문대학원을 논하기 전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가능하다고 하는 새로운 교육방식이 왜 법학전문대학원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또한 왜 그동안 이렇게 훌륭한 교육방식을 대학 안에 도입하기 위한 목소리들이 교수사회에서 분출되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교정마다 걸려 있는 사법고시 합격생들의 명단은 그래서 학교의 자랑이 아니라 무너진 공교육의 현실이며 부끄러운 한국 교육의 자화상일 뿐입니다. 이 수치스러운 현상을 자랑스레 현수막까지 찍어서 교정에 내걸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교육자들의 자가당착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들어야만 법학교육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시기 전에 여러분들이 먼저 현재 학부체계의 법학교육을 개혁하자는 주장을 하셨더라면 그 충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없이 학제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 교육개혁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처럼 주장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과과정의 변화나 구성원들의 자세변화는 법학전문대학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2) 대학은 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입시학원이 아닙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설치가 교육내실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에서 일정한 학점을 취득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현실로 들어갈 때 법학전문대학원이 대학교육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미 우리 교육계에는 여러 전문대학원들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의학전문대학원입니다. 한국교육의 왜곡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양대산맥으로 문과에서는 법대, 이과에서는 의대를 꼽습니다. 당연히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함으로써 대학교육 정상화를 이루겠다는 야심찬 목표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똑같이 논의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전문대학원이 개설되어 교육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과계열의 대학교육은 과연 정상화 되고 있을까요? 의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됨으로써 의대에 편중된 입시문제가 일정정도 해소되고, 동시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시할 수 있는 관련학과의 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예측에서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대에 편중된 입시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쉬운 학과들에 학생들이 몰리는 편향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명과학분야의 학과나 생물, 화학 관련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당 학과 학부의 교육체계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위한 전초기지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외형적으로는 의대 이외에 다른 분야의 학과에 학생들이 의욕을 가짐으로서 다양한 학문분야의 발전이 도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용이한 학과로 학생들이 몰려가면서 그렇지 않은 다른 학과의 입시경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을 과연 교육정상황의 일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대에 편중되는 교육수요가 모든 인문사회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문사회영역 전체에 고루 교육수요가 확산된다는 낙관론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그러한 현상을 교육정상화의 단면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협소한 관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는 차원으로 전체 인문사회영역에 교육수요가 확산되도록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법학부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법학전문대학원 안에 따르면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는 학교만 법학부를 없애도록 되어 있을 뿐 그렇지 않은 학교는 현행 법학부를 그대로 존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인문사회영역에 교육수요가 확산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전체 인문사회영역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학습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요? 또한 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전공 학과에서 취득하는 학점이 일정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정상화된다는 것 역시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일부 교육자들은 자기 전공을 팽개치고 사법고시에 전념하는 학생들에게 자기 전공에 대한 학습을 해야 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전공학점취득에 열을 올리는 것과 진정 자기 전공을 사랑하고 그것을 자신의 길로 여기면서 전공학점취득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지 입시를 위한 준비작업으로서 하기 싫은 과목, 관심 없는 과목일지라도 전공학점을 따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진행한 학습이 과연 얼마나 교육정상화라는 대의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학부전공의 결과를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형태의 법학전문대학원 커리큘럼이 이루어진다면 대학교육정상화를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과연 환경전문변호사, 노동전문변호사, 의학전문변호사를 특화하여 양성할 수 있을까요? 법조인 양성과정에 대해 과문한 저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양성과정은 들어본 바가 없으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이처럼 분야별로 특화된 변호사를 양성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누구보다도 여러분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건 어떤 체계건 간에 법학교육과정에서 전문적으로 특화된 분야의 특정 법조인을 배출하지는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법학부가 되었던 법학전문대학원이 되었던 간에 교육과정 그 자체는 일반적으로 법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이고 공통된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고, 특정 분야에 뛰어난 법조인이 되는 것은 변호사자격을 취득한 이후에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전공자를 받아 법학전문대학원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은 특정분야의 법조인이 탄생하기 위한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특정분야의 법조인을 육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부과정에서 법대가 없는 미국의 로스쿨 제도에서조차도 학부전공을 바탕으로 특정분야의 전문법조인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법학전문대학원이 학부전공을 전제로 운영되는 것도 아니며, 바로 그런 이유로 법학전문대학원이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일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일 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입니다. (3) 법학전문대학원은 또 다른 형태의 고시낭인들을 배출합니다. 2002년도에 사법시험 응시자는 3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 가운데 998명이 합격을 했고 응시자 대비 최종합격률은 불과 3.61%에 불과했습니다.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치면 사법시험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험생의 숫자가 몇 만명이나 되는지 추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 극소수만이 사법시험에 합격함으로 인해 사법고시 합격의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며 고시를 준비하게 되고, 그 결과 소위 말하는 ‘고시낭인’들의 숫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을 걸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이유는, 사법고시의 합격이 전격적인 신분상승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조선시대 과거급제를 하는 것과 같이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그 즉시 “출세”한 것과 동일시되는 오늘날의 이 현상이 사법고시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임은 재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인해 지금도 수많은 ‘고시낭인’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 역시 불문가지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사법시험제도가 완전히 혁파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맴돌고 있는 ‘고시낭인’들을 법학전문대학원 근처로 끌어오는 것 이외에 별다른 변화를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률안은 물론이려니와 기존에 사개위 및 사개추위에서 논의되었던 바는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하여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키고, 이들이 법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였을 경우 누구라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 골간이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다시 말하자면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 변호사”라는 결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한계로 인해 변호사 인원에 대한 논쟁이 입학정원에 대한 논쟁으로 번지고 있으며, 변호인 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측이건 늘리자는 측이건 입학정원자체에 일정한 제한을 두자는 전제에 대해서는 미묘한 합의가 이루어지는 구조가 발생합니다. 형식이 이렇게 변화하다 보니 현재 사법시험 합격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고시낭인’들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입학정원의 한계로 인하여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현행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것처럼 또 다른 형태의 준비과정을 거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즉, 학부과정에서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수험준비를 하게 되고 혹은 더 나가서 대학에서 충분히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학습을 할 수 없을 경우 또다시 사설학원을 통해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학교육이 정상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대학 전체가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준비학원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마다하지 않는 입시생들의 처연한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대학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위해 대학 졸업을 미루고, 대학졸업을 미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학점을 줄여 등록하거나 아예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발생한다면 이것을 대학교육 정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길게는 몇 년씩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발생한다면 그 때는 이들을 ‘입시낭인’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신림동 고시학원은 한 달 간격으로 수강료를 내기라도 하는데, 한 학기 단위로 등록금을 내야하는 이 학생들의 비용부담은 무슨 수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빛나는 20대는 물론이고 한창 일해야 할 30대마저도 고시합격을 위해 ‘고시낭인’이 되는 것을 마다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현재의 풍토를 보며 안타까워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의 결정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제 본인이 홀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가 나서야할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저 또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의 방식이라는 것이 ‘고시낭인’을 ‘입시낭인’으로 바꾸는 차원에서 멈추게 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기만이며 더욱 심각한 문제를 양산하는 원죄가 될 것입니다. 2. 법학전문대학원은 또 다른 기득권의 양산체계가 될 수 있습니다. (1) 법조의 문제는 기득권의 문제입니다. 한 쪽에서는 우리 사회에 변호사들이 너무 많아져서 큰 문제라고 합니다. 변협을 중심으로 이러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국가가 무작정 변호사만 늘려놓고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써 숱한 고통의 과정을 지나면서 겨우 변호사가 된 사람들에게 당장 생계곤란까지 겪도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연간 1천명 가량 충원되는 사법고시 합격생들의 숫자조차 많다고 지적합니다. 저는 이분들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변호인의 숫자는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충분한 충원이 이루어져야할 만큼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일부 변호사들의 생각처럼 송무업무만을 변호사 업무의 중심으로 생각하더라도 현재의 변호사 수는 적정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으며, 향후 경제규모의 증가 및 법률전문인력수급의 사회적 요청급증 등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변호사 충원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법영역 뿐만 아니라 입법과 행정, 기타 사회 각 영역 전반에 걸쳐 법률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활약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충분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시급히 개설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여러분들의 견해와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전제에 따라서 저는 극히 소수의 법률전문가에 의한 법률서비스시장의 독점현상이 우리 사회의 법률구조가 지금과 같이 왜곡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가침의 독점구조를 깨트릴 때, 이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자조어린 목소리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며, 보다 투명하고 발전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의 총론적 과제 역시 바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특정집단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한 사법개혁이 아닌 기득권을 타파하고 민주적이며 개방적인 사법실현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진행되는 것이 바로 사법개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편지를 보내신 박경신 교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현재의 정치 지형상” 변호사의 증원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동시에 현재의 사법고시제도를 변호사 자격시험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변호사 양성의 방법이 획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저의 견해에 대해 “이론적인 가능성만이 있는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왜곡된 현재의 법률구조에 대해 저나 민주노동당이 “사법시험 정우언의 증원에 힘을 모아”주지 않았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하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박경신 교수께 반대로 질문을 드립니다. 지난 세월동안 법학교육의 현장에서 왜곡된 법률구조로 인한 고통을 가장 격렬하게 겪으셨을 법학교수 여러분께서 과연 얼마나 자기 제자들의 미래와 이 땅 사법구조의 개혁을 위해 처절하게 법학교육의 개혁과 법조기득권 타파를 위해 애쓰셨던가요? 누구의 책임이 크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함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바로 현장에서 가장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선두에 써서 투쟁할 때에 그러한 요청이 일반의 동의를 얻고 대중들의 연대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박경신 교수님의 글에서는 법조기득권의 폐단에 대한 절절한 분노와 함께 이를 타파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바로 이러한 분노를 가지신 분들이 법조기득권에 대한 전면적인 항의를 앞에 걸고,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우회로를 이야기하시기 전에 현재 학부의 법학교육을 과감하게 개혁하고 변호사 자격시험의 도입을 통한 법조인 선발을 강력하게 피력하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한 현장의 요청이 선행되고 이해집단간의 상충되는 주장들이 공론의 장에서 소용돌이치게 되면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의 분명한 입장이 개진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조인양성과 법학교육의 개혁에 대한 논의는 정권교체기마다 하나의 화두처럼 떠올랐다가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고, 지난 YS정부 이후 소위 전문가들만이 참여하는 각 위원회 내에서만 설왕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제 “법학전문대학원=개혁”이라는 등식을 사회적 아젠다로 만들고 어떤 이유에서든 법학전문대학원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개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행 사법제도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건 또는 평생 법 없이 살 사람들이건 간에 어떤 제도가 좋은지 판단하기 위한 정보도 제대로 갖지 못한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유포된 “법학전문대학원=개혁, 법학전문대학원 반대=반개혁”이라는 왜곡된 구도를 사실관계처럼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법개혁은 독점적으로 행사되는 소수의 법조기득권을 타파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법조기득권을 타파하는 방법은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우회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법조기득권의 문제들을 낱낱이 드러내고 국민들로 하여금 변호사의 증원이 왜곡된 법률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준비작업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법학교육의 일선에 서 계신 여러 교수님들이 나서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라면 언제 어디라도 제가 함께 할 것임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2) 법학전문대학원은 또 다른 기득권집단을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을 통한 법학교육과정 개편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도는 현재 기득권을 가진 법률가 집단의 독점구조를 혁파하기 보다는 오히려 또다른 기득권 집단을 양산하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즉, “사법고시→사법연수원” 과정을 거친 현재의 기득권 취득구조 하에서 독점적 법률서비스체제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의 권력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의 기득권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2중의 기득권 구조를 양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설령 “사법고시→사법연수원”과정을 거친 현재의 기득권자들의 권력을 일정부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반대급부로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들의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2004년, 국립은 연간 800만원, 사립은 연간 2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이 필요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립이 남발한 일본의 경우보다 훨씬 강력하게 각종 기준을 둘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들이 부담해야할 등록금의 규모는 일본보다 더할지는 몰라도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가 만나본 전문가들의 견해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의치학전문대학원의 경우 대부분 2천만원에서 4천만원의 연간 등록금이 필요합니다. 제가 법학전문대학원에 약 2천만원에서 4천만원의 등록금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이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사실 많은 대학들도 이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학비부담을 감수하면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일지 너무나 분명한 상황입니다. 저에게 편지를 보내신 박경신 교수께서는 이러한 저의 걱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면서 기우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쿼터(quota)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사회취약계층의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보장하겠다. 둘째, 충분한 장학금제도를 통해 사회취약계층의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겠다.” 얼핏 보면 제가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건데, 쿼터제도나 등록금제도의 도입을 기존 대학의 학부수준보다 조금 높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5%정도의 취약계층 쿼터제를 말씀하셨고, 이는 현행 대학에서의 농어촌 특별전형 1%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농어촌 특별전형은 4%입니다. 현재의 대학입시에서의 특별전형 방식으로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쿼터가 실제 어느 정도로 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정책적 알리바이 형성의 수준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박경신 교수께서 말씀하시는 사항 중 “사회취약계층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돈을 많이 걷어서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쓴다”고 하신 부분에서 이 제도가 가지는 위험성의 일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등록금은 세금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던 바가 있으며, 지금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부의 공평한 분배를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확보된 재원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학비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미처 확인하시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등록금은 세금이 아닙니다. 박경신 교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자면 일부 사회취약계층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극소수의 상위계층 자제들 이외의 다른 대다수의 학생들은 등록금의 부담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을 간과한 채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사회취약계층에게 기회의 평등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학생 선발에 있어서 특별히 우대를 하고 있어 ‘결과의 평등’까지도 일부 보장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매우 외람되지만 어불성설이라고 판단됩니다. 이처럼 과도한 비용을 들여 법학전문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높은 수익을 바라지 말고 공익적인 분야에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해줄 것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열심히 경쟁하고 돈을 벌어 그동안 투자했던 등록금과 등록금을 내기 위해 받아야 했던 은행 대출금을 갚아 나가는 것을 그대로 용인해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혜택’을 입은 일부 사회취약계층출신 학생들에게만 서민을 위한 공익적 변호업무를 수행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과정을 위해 지출했던 모든 비용은 그대로 서민들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외면과 상류층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편향된 법률서비스의 제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걱정을 과도한 기우라고 치부하기 위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배출되는 변호사의 수가 지금 수준보다는 훨씬 많아야 하며, 그들이 학비의 부담을 갖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변호사 자격을 얻은 후에 가난하고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해 충분히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은 전혀 그러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이상에서 언급한 등록금 문제 이외에도 교육기간의 연장으로 인한 부가적 지출이나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사교육시장의 등장 등 교육비가 소모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더라도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법학전문대학원제도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입니다. 박경신 교수께서는 민주노동당 내에서 혹여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를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할지 모르겠다는 우려를 하십니다. 우려하신 바대로 민주노동당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를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으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박경신 교수께서 지적하고 계시는 부분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박경신 교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국민들의 인권보호에 국가가 적극적인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국민들이 알아서 자신을 보호하도록 한다는 명목 하에 변호사 숫자만을 늘여놓으려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국가가 변호사 숫자와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제도를 통해 변호사를 양성하려 하지 않고, 변호사 직업교육을 ‘민영화’하여 시장에 맡기는 것도 ‘신자유주의’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민주노동당이 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판단하는지를 분명히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장황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박경신 교수께서 지적하시는 것에 따르면, 사법시험을 변호사 자격시험으로 바꾸고 변호사를 다수 양성하자는 민주노동당의 당론 역시 신자유주의의 한 일환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 수의 확대를 통해 법조기득권의 독점구조를 해체하고, 변호사들이 일정한 경쟁구도를 가지게 됨으로써 양질의 법률서비스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민주노동당의 판단 역시 어느 정도 시장의 조절기능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시다시피 민주노동당은 “국가가 변호사 숫자와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제도를 통해 변호사를 양성”하는 현재의 체계를 명백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해야한다고 주장하시는 다른 분들과 그 취지에서는 다른 것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법학교육이 ‘사립대학’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여 이를 ‘민영화’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립대학은 설립을 민간이 했을 뿐이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당연히 공교육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사립대학에 설치된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학교설치를 두고 민주노동당이 ‘민영화’라고 하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단지 ‘경쟁구도’를 통해 국민들이 알아서 법률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서민들에게 보다 훌륭하고 알찬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법률가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법학교육을 이수토록 하고 일정한 정도의 학업성취를 달성한 모든 이들에게 변호사 자격을 준다면 여러 가지 유익한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사설 고시학원을 배회하게 되는 ‘고시낭인’을 줄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훌륭한 인재들이 각자 원하는 분야에서 조속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배출된 변호사들이 단지 송무업무에만 모두 매달려 과당경쟁을 유발하는 구조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법률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 과도한 비용의 투자가 줄어들게 됨으로서 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를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법학교육의 개혁과 법조인 양성과정의 개선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진행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개방되어가는 법률시장에 대처하며 국제적 사법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과 다양성을 목표”로 하는 법조인 양성계획에 따라 계획된 것이 바로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에 의해 설립되는 법학전문대학원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표면상의 취지와는 달리 경제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인적자원’을 양산한다는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에서부터 이 경제논리는 충실하게 관철됩니다. 비록 ‘사회취약계층학생’들에게 일부 지원을 할지라도 애초부터 경제적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학생들 위주로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우월성을 바탕으로 고비용의의 법학교육을 마친 다음 결국 기업이 요구하는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으로서의 법률가가 되어 그들의 경쟁력을 살 수 있는 계층의 이해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조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학문으로서의 법학교육은 황폐해지게 되고, 법률전문가는 다만 법실무 전문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변질됩니다. 우수한 법조인의 양성이라는 기능위주의 사고방식이 가져올 결과는 일반 법과대학원의 교육과정까지도 왜곡시키면서 오직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적자원’만을 육성하게 될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 내에 일반 법과대학원과정을 두든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지 않는 학교에 일반 법과대학원과정을 두든 간에 일단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가지는 동기부여가 큰 상황에서 일반 법과대학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제가 만난 법학전문대학원을 지지하는 여러 교수님들조차 인정한 사실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논리 안에 인간성마저 포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연히 반대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경신 교수께서는 이러한 부분은 외면한 채 “실제 국민들에게 절실한 것이라면 신자유주의든 사민주의든 어떤 꼬리표가 붙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역설합니다. 저는 이 시대의 지성인 법학 교수께서 이런 위험한 발상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며 대단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의 기능에 맡겨버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실제 국민들에게 절실한 것”인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설령 그 폐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더라도 이를 바로잡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지성인들이라고 볼 때, 박경신 교수님의 이와 같은 발상은 저와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는 결코 수긍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이 땅의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해가 합치될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언급하면서 “신자유주의라해도 좋다”는 발상을 하는 것을 과연 전태일은 용납할 수 있을까요? 박경신 교수께서는 “전태일이라면 로스쿨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하시나,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한 전태일이 오늘 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는 사법개혁논의를 보게 된다면 아마도 또다시 심각하게 자신의 몸을 사를 것을 고민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노동자 전태일의 이름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을 위해 거론된다는 것은 심히 안타깝고 불쾌한 일입니다. 3. 더 많은 논의와 더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안이 발표된 이후 각 대학이 지금까지 법학전문대학원 유치를 위해 투자한 비용이 총 20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각 대학이 앞다투어 시설확충과 교수충원에 재원을 투자한 결과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이렇게 투자를 할 수 있었던 대학들이 왜 그동안 교육환경의 개선을 위해 투자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법학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학과는 이러한 개선이 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대학의 투자는 그대로 등록금의 인상으로 반영되기 십상입니다. 시설의 확충과 교수의 충원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교육환경 개선사업은 분명히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교육분야의 문제점을 고민해온 저는 그 투자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거나 혹은 투자를 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는 관행이 존재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각 대학은 돈이 없다는 핑계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등한히 하는 반면 바로 그 돈이 없다는 핑계를 내세워 해마다 엄청난 등록금 인상을 단행해왔습니다. 그런데,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겠다며 대학이 무려 2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이것은 그동안 돈이 있었음에도 돈을 쓰지 않았던 것이거나 반대로 빚을 내서라도 일단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면 관행처럼 학생들에게 엄청난 등록금을 받음으로서 얼마든지 자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가 아니었을까요? 전자건 후자건 사실이 그렇다면 대학은 신랄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교를 유치하기 위한 과열경쟁 와중에 그 많은 돈이 투여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대학들이 국민과 학생들을 속여 왔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법학전문대학원 유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상아탑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각 대학들이 자기 학교에 설치한 모든 학문분야에 대해 충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교육 자체가 건강하게 된다면 법학교육 역시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과잉투자가 이루어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느낀 두 번째 우려는, 이처럼 기 투자된 비용이 천문학적임에 따라 일단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들고 봐야한다는 압력이 각 대학으로부터 제기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쏟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문제가 있건 없건 하던 일을 계속 추진해야한다는 발상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손실을 입어왔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새만금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그 너른 바다를 막아 농지를 만든다고 했던 새만금사업은 경제적 효율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특히 해당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중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사를 위해 투자된 돈이 천문학적이라는 이유를 앞세워 공사는 강행되었고 그 결과 우려하던 문제점들이 현실로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논란의 와중에 이러한 현상이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각 대학들이 투자한 비용이 있으므로 어떻게든 일단 법학전문대학원을 개설하자는 압력이 거세질 경우 교육부는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압력에 굴복하여 교육부가 이처럼 허술하게 계획되어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계획을 현실화한다면 앞서 언급했던 모든 우려들은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법학교육판 새만금 사업”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모든 내용을 공론화해서 전 국민들이 이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저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지지하는 여러분들이 각 의원들에게 서신을 띄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이 과정이 법학교육의 정상화와 법률가 양성과정의 합리화를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06년 11월 23(목)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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