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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이 할머니는 4월4일 오전 7시30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올해로 100살. 추운 겨울 지지 않는 동백을 닮았다 해서 평소 ‘위안부’ 활동가들은 ‘동백꽃 할머니’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결기와 굳건한 정신에 새삼 고개가 숙여집니다. <한겨레>는 이순덕 할머니의 영면을 맞아 그동안 이 할머니와 함께 한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때론 기사로, 때론 사진으로 <한겨레>와 함께 해주신 이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전하고픈 선물입니다.
삶의 끝까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이 할머니의 정신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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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법원으로부터 배상금 지급 판결을 끌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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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다시 봄…끝없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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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린 2007년 3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들머리에서 당시 나이 90살이던 이순덕 할머니가 대사관 옥상에 펄럭이는 일장기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 할머니들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망언을 규탄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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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27일 제767차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순덕 할머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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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27일 제767차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순덕 할머니에게 한 여성 활동가가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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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31일 오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의 발언을 듣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이순덕 할머니(맨 오른쪽)가 환히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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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4일 제85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4일 낮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순덕 할머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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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11일 낮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930차 수요집회에서 이순덕 할머니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0년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였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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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단 카네이션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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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4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의 기지촌 할머니 쉼터인 햇살사회복지회(대표 우순덕)에서 성매매 피해 청소년을 위한 학교인 ‘늘푸른자립학교’의 학생한테서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길원옥·김복동·이순덕(왼쪽부터) 할머니는 이날 쉼터 할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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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4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있는 기지촌 할머니 쉼터인 햇살사회복지회를 방문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카메라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이순덕 할머니(오른쪽부터)와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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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우리집’ 짝꿍만 남기고… [%%IMAGE11%%] [%%IMAGE12%%] 이 할머니의 ‘짝꿍’은 길원옥(89), 김복동(91) 할머니입니다. 세 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쉼터인 ‘평화의우리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평화의우리집’은 2003년 12월 서울 서대문구에 둥지를 틀었다가 2012년 10월22일 마포구 연남동으로 이사했습니다. 2011년 3월1일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서대문구 ‘우리집’에 들렀을 때만 해도 이 할머니는 짝꿍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IMAGE13%%] 하지만 2012년 10월22일 쉼터 이삿날, 이 할머니는 없었습니다. 당시 <한겨레> 최우리 기자는 기사(클릭)에서 “길 할머니는 병원에서 요양 중인 이순덕 할머니의 요강과, 길 할머니가 챙겨 달라고 여러 번 부탁한 된장 담은 항아리와 물고기 담은 통까지 하나씩 챙겨오자 그제야 미소를 되찾았다”고 썼습니다. 이 할머니가 95살 때 일입니다. 더 이상 수요집회에 나온 이 할머니의 모습도 찾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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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전한 마지막 소식 [%%IMAGE14%%] 이 할머니가 <한겨레>와 세상에 마지막으로 알린 소식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합의안은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었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끼쳤다”는 취지입니다. 이 할머니와 ‘짝꿍’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박옥선·이용수 할머니 등 모두 12명이 소송에 참여했습니다. “죄 없는 죄인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일본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여 후유증을 보상하라”던 이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남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38분입니다. 글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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