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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1 13:40 수정 : 2017.06.01 21:16

박상혁의 예능in, 예능人

내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에스비에스) 피디를 그만둔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뒤로 코미디와 상관없는 프로그램들을 연출했고 심지어 회사도 옮겼지만 아직도 <웃찾사>와 함께한 시간을 잊지 못한다. 내 피디 인생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5월31일) 14년동안 방송되던 <웃찾사>가 끝났다. ‘시즌 종영’이라고 하지만 경험상 다음 시즌 계획 없이 끝나는 시즌 종영은 언제나 폐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웃찾사>가 처한 상황이 좋은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연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청률 30%를 넘기던 프로그램이 개그맨들의 계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8%로 추락했다. 곧바로 없앨 수는 없으니 피디를 교체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폐지하기로 했다. 겨우 7년차였던 나는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난생 처음 코미디를 해야 했다. 그 전까지 일주일에 하루만 연예인과 촬영하고 대부분은 편집실에서 살던 나에게 코미디 프로그램은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톱스타 한 명 없이 개그맨 100명이 일주일의 시간을 온전히 쏟아부어 만드는 프로그램, 그래서 코미디는 언제나 노동집약적이었다.

다행히 ‘나 몰라 패밀리’, ‘형님뉴스’, ‘서울 나들이’ 같은 코너(꼭지)들이 연이어 터졌다. 시청률은 3개월 만에 다시 20%를 돌파했다. 매주 새로운 유행어가 터졌고 목요일 밤 검색어는 다시 <웃찾사> 차지였다. 대학로 극장에서 청소하던 개그맨 지망생이 한순간 벼락스타가 됐다. 주말마다 전국 투어 공연이 있었고 국외 투어도 생겼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참 많았다. 개그우먼 김형은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던 날. 그날도 <웃찾사> 녹화가 있었다. 모든 개그맨이 상복을 입고 발인을 마친 후 다시 모였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그 얼굴에 다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했다. 무대는 언제나 신성한 곳이었고 그렇게 쇼는 계속되어야 했다. 어느 날은 개그우먼 김신영이 의자에 앉으면 의자가 부서지는 장면을 연기하다가 못에 찔렸다. 다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웃으면서 코너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병원에 실려갔다. 다들 코미디에 미쳐있었고 힘들어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당시에는 <연예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연말에 드레스를 입고 서로에게 트로피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했다. 난생 처음 상을 받았던 신인 개그맨들이 대부분 오열했다. 웃음 뒤에는 언제나 눈물과 아픔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시청률이 잘 나오자 일요일 오후 7시로 시간대를 옮겨 당시 <일밤>(문화방송), <해피선데이>(한국방송2)와 맞서야 했다. 그럭저럭 버텼지만 3분짜리 코너로 구성된 코미디가 초대형 예능프로그램과 맞붙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디들도 좀 잘한다 싶으면 바로 버라이어티로 옮겨야 했다. 잘나가는 작가의 드라마가 들어오면 자리를 비켜주고 스타 진행자가 있는 예능프로그램이 생기면 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안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잘 되면 잘 되기 때문에 시간대를 바꾸고 연출자가 교체되었다. 그렇게 14년 동안 방송시간대를 16번이나 옮기면서 ‘웃음을 찾기 전에 시간대부터 찾아라’라는 비난은 언제나 개그맨들의 몫이었다.

지난 주에 우연히 10년 전 내가 공채로 뽑았던 개그맨을 길에서 만났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웃찾사>에 돌아가려고 코너를 짜고 있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웃찾사>는 없어져도 아직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계속 열정을 갖고 도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일까? 나 역시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쇼는 다시 계속될 수 있는 것일까?

박상혁 올리브티브이 <섬총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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