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런, 홀로!?
‘약속 갑질러’의 횡포
▶ 한국의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삽니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주변엔 결혼적령기(라고 알려진)를 맞았거나 이미 지나버린 젊은이가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또한 당신이기도 하고요. 그런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혼자서도 잘 사는 홀로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기사에 대한 의견이나 사연도 기다립니다. fkcool@hani.co.kr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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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냈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개념 없는 약속 갑질러가 나의 귀중한 시간을 망쳐놓는다면, 그건 나의 삶에 대한 침범일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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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음에…”
나의 주말은 뒤틀린다 약속 갑질은 내 삶에 대한 침범
영화관 ‘20분 전 취소’처럼
마음 상하지 않는 관계는 없을까 두번째 유형은 바로 골방형 예술가 유형. 그들은 사실 사회적인 동물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나. 약속이라는 것이 결국 사회적인 성격인데, 태생적으로 타인과 무엇을 같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도 있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부담감을 느낀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나도 일정 부분 그러했다. 상대방이 특별히 싫어서가 아닌데 타인과 무엇을 같이하는 것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공통의 화제는 무엇인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와 같은 내용에 직면하다 보면, 약속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남은 버튼은 임박한 취소. 공통적으로 이러한 약속 갑질러들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시간에도 권력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약속 갑질이 어쩌면 ‘갑질 오브 갑질’이자 갑질의 최고봉인지 모른다. 혼자서 텅 빈 시간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근처의 영화관에 갔다. 스마트폰으로 자리를 선택하고 결제했다. 알림이 뜬다. “20분 전에만 취소하면 100% 환불 가능”하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문득 극장의 영화는 20분 전까지만 취소하면 환불이 되는데, 사람과의 약속도 20분 전까지 취소하면 면피할 수 있는 것일까? 안 그래도 영화가 요즘 너무 길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극장까지 나가기 귀찮아지면, 21분 전에, 침대에 누워서 앙증맞은 취소 버튼을 성큼 누르곤 했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명의 갑질러한테 당하고 보니, 문득 ‘사람이나 관계도 그럴 수 없는 걸까?’ 싶었다. 20분 전에 취소 버튼을 누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는 그런 행복한 경우의 수는 없는 것일까? 15초 정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극장의 영화는 일방향적인 서비스이지만 사람은 상호적인 관계니까. 관계의 기본은 쌍방이니까.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신생아들은 태어나서, 엄마의 젖을 물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배운다고 한다. 그 뒤로 3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불쑥불쑥 우리는 내가 아닌 것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시간표를 나의 편의대로 바꿔놓는 것. 나의 시간이 나의 것이라면, 타인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심 기대도 한다. 상대방이 내 시간표대로 움직여줬으면 한다. 우리는 친하니까,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되었으니, 우리는 지금 진지하게 만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간에 매여 있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냈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개념 없는 약속 갑질러가 나의 귀중한 시간을 망쳐놓는다면, 그건 나의 삶에 대한 침범일지 모른다. 영화는 끝났다. 극장을 나서면서 난 스스로에게 원칙을 정하기로 했다. 다음부터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첫번째는 경고 사격. 두번째는 응징. 그리고 세번째부터는 동일하게 나도 그의 시간에 갑질을 행사할 생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마음이 후련해진다. 정연욱 30대 홀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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