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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3 09:24 수정 : 2019.10.13 09:27

[토요판] 이런 홀로
내게 차가 필요 없는 이유

30대 넘어서고 아이 생기며
주변엔 차가 필수템 됐지만
여전히 내 옵션에 차는 없어

시장에서 산 저녁거리 싣고
골목을 가로지르는 일상 풍경
자전거 타면서 비로소 보게 돼

어떤 작가의 소개 글에는 ‘평생 한 번도 ○○주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땐 그런 소개 글이 그저 묘하게 느껴졌고 ‘아, 옛날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식으로 한곳에 가라앉아 버리는 작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떠 걸어서 그가 같은 곳에 일을 하러 가는 장면을, 일을 마치고 동네에서 장을 보고 자신의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매일 일정한 반경을 오가는 반복적인 생활이 쌓여 만들어낸 긴긴 시간이란 어떤 깊이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이 차 어때?” 애인이 요즘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것은 중고차 매매 앱이다. 그는 가격, 연비, 디자인 같은 것을 비교해가며 자꾸 차 사진을 내 눈앞에 들이민다. 나는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 나는 여전히 차 없는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어?” 나는 짐짓 그런 말을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차 없이 산 것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해서가 아니다. 지구에 대해서도 조금은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자동차가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는 수능을 본 직후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따놓았는데, 정작 운전을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가끔 아빠 차를 운전해 대형마트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후 독립해 혼자 살고부터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예 자동차와 멀어져 지내고 있다. 그것이 내게 자연스러웠고,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니까 ‘자가용 차’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얼마 전 만난 선배는 대뜸 “너, 차 없어?” 하고 물었다.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연휴 낀 주말이라 기차표가 매진이더라는 말이 나온 순간이었다. 나는 “네, 없어요” 말하고 선배의 얼굴을 보았다. “남자친구도?” 그는 물었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뭔가 말을 덧붙이려다 말고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희 여행 많이 다니잖아. 그럼 그걸 다 걸어서 다닌 거야?”

단순한 삶이 주는 매력

내 생활의 동선은 단순하다. 다행히도(불행히도)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갈 일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는 30대쯤 되면 자동차를 타고 바쁘게 도시의 끝과 끝을 오가며 살아가게 되는 줄 알았다. 비행기를 타고 글로벌하게 이 나라, 저 나라로 출장을 다니거나.

그러나 30대인 나의 삶은 언제부터인지 아주 작은 반경으로 줄어들었다. 출퇴근하는 작업실까지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한다. 퇴근 후 운동하는 클럽까지는 자전거로 5분이면 닿는다. 일 때문에 시내에 나갈 때는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주로 동네에서다. 혹 멀리 나갈지라도 밤에 놀 때는 주로 술을 마시기 때문에 자동차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요즘 이동수단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자전거다. 나는 자전거를 예찬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어쩐지 자전거는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지하철역에서 먼 편이라 그런지 이곳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아주 많다. 지하철역 바로 옆에 제법 기다랗게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는 항상 낮밤으로 자리가 바뀌는, 먼지가 전혀 쌓이지 않은 자전거들이 가득 세워져 있다.

지하철역까지 출퇴근하는 용도가 아니더라도 이 동네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한강 공원이 근처라서 자전거도로가 비교적 잘 닦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운동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타고부터 비로소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처럼 자전거 바구니와 손잡이에 근처 시장에서 산 저녁거리 같은 것을 싣거나 매달고 천천히 골목을 가로지른다. 교복 입은 아이들은 뛰는 친구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자전거 바퀴를 굴린다. 노인들도, 청년들도 어딘가를 향해 페달을 구른다. 늘 보는 상점과 나무와 집들을 지나며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정말 이곳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소박하고도 생경한 생활감이 샘솟는다.

가끔 책날개에서 한곳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는 작가 소개 글을 본다. ‘1908년 노르웨이 울빅(Ulvik)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994년까지 살았다’와 같은 것 말이다(시인 올라브 헤우게의 소개 글이다). 예전에 보았던 어떤 작가의 소개 글에는 ‘평생 한 번도 ○○주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때는 그런 소개 글이 그저 묘하게 느껴졌고 ‘아, 옛날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그런 식으로 한곳에 가라앉아 버리는 작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올라브 헤우게는 원예학교에서 공부한 후 정원사로 평생 일하면서 숲속에서 시를 썼다고 한다. 이제 나는 그가 매일 아침 눈을 떠 걸어서 어느 정원에 일을 하러 가는 장면을, 일을 마치고 동네에서 장을 보고 자신의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종종 떠올린다. 매일 일정한 반경을 오가는 작은 사람과, 반복적인 생활이 쌓여 만들어낸 긴긴 시간을 생각한다.

걸어서 하는 여행이 더 좋다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직장을 갖고, 결혼해 자리를 잡은 이들 중 상당수에게 자동차는 필수 품목이 된 지 오래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 직장과 거리가 먼 신도시 아파트에 자리를 잡거나, 가족 행사에 관여할 일이 많아지고 나이 든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일도 많아진다. 특히 아이가 있는 친구들은 자가용 차가 없으면 불편하다고들 말한다. 아이 엄마가 아이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많은 일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중엔 자동차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얼마 전엔 나도 도로 위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차 안에서 혼자 소리를 꽥꽥 지르는 사람을 보았다(뒷좌석 창문이 열려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는 혼자 집에서 소리를 지른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내게 자동차가 아쉬울 때는 딱 하나다. 갑자기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을 때다. 특히 비박 캠핑을 자주 떠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주말 괜찮은 시간대에는 예매해두지 않으면 기차나 버스표가 매진이기 일쑤다. 그럴 때 ‘지금 자동차가 있으면 휙 떠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좋은 비박지는 대체로 외딴곳에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닿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택시를 타면 택시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택시를 타지 않으려면 상상 밖의 많은 시간과 체력이 든다. 하루에 몇 대 오지 않는 시골 버스를 시간 맞춰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고, 최대한 가까운 곳에 내린 뒤에도 지나는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캠핑 친구인 애인이 중고차 앱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그런 연유다.

그러나 그가 어떤 결정을 하든, 여전히 나의 구매 옵션에 자동차는 없다. 오직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을 것에 대비해 자동차를 사고 싶지는 않다. 1년 중 대부분의 시간, 자동차는 주차장에 외로이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보험료와 세금과 유지비만 갉아먹으면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엔 힘이 들어도 걸어서 하는 여행이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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