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준의 공감하는 서양음악
(4) 평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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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 소품들은 평균율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옥타브 단위로 단순하게 패턴화된 피아노 건반은 고난도의 손놀림을 가능하게 해주며, 평균율로 고르게 조율된 음들은 현란하고 자유로운 조옮김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섬세한 음감을 저버린 조율법이 오히려 고도로 섬세한 작곡과 연주를 가능케 해준다는 점은 평균율의 역설이다. 사진은 지난 1월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연 조성진의 리사이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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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통영에서 열릴 피아니스트 조성진 리사이틀의 온라인예매가 오픈되자마자 1000장이 넘는 티켓이 단 79초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재작년 쇼팽 국제콩쿠르 우승의 후광이 크지만, 조성진이 한국의 잠재적 클래식 애호가들을 새롭게 공연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한국에서 피아노만큼 넓게 저변이 형성되어 있는 클래식 악기도 없다. 전국의 중소도시까지 동네 곳곳에 ‘피아노 학원’이 있는 나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피아노를 비롯한 건반악기 일반은 서양음악의 근대성과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건반’이 영어로 ‘키보드’(keyboard)인데, 컴퓨터에서 쓰는 ‘키보드’가 그렇듯 악기라기보다는 기계 장치에 가깝다. 깃털로 현을 튕기든(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의 경우) 망치로 현을 때리든(피아노), 나아가 전기적으로 합성된 음을 내든(신시사이저) 최종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 장치의 몫이다. 키보드 연주자는 소리 나는 현을 만지거나 보지도 않는다. 그는 소리의 자연적 진동으로부터 신체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소리를 ‘입력’할 뿐이다.
서양 근대음악의 ‘조’(調)가 ‘키’(key)로 불리게 된 것도 건반악기, 즉 키보드의 중요성이 커지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건반악기가 서양음악에서 주도적 위치에 오르는 배경에는 16~17세기 이후로 화음(chord)과 화성(harmony)의 중요성이 커지는 현상이 있었다. 건반악기는 양손을 모두 쓸 경우 최대 열 개의 음을 동시에 낼 수 있는 성능 좋은 화음 악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기계 장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소리를 내는 건반악기가 음악인들의 섬세한 표현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풀어야 할 기술적 과제는 한둘이 아니었다. 음량 변화를 줄 수 없는 하프시코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18세기 초에 피아노(발명 당시 명칭이 ‘피아노포르테’였는데 셈여림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라는 뜻이었다)가 발명된 것이 한 가지 사례가 되겠다. 하지만, 건반악기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율’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양음악사에서 ‘평균율’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바흐와 ‘잘 조율된 건반’
조율이나 음계가 문화와 관습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자연이 제공하는 몇 가지 보편적인 음정(interval, 음 간격)들이 있다. 예컨대 옥타브 음정과 완전5도 음정(‘도’와 ‘솔’ 사이의 음정)이 그렇다. 현의 길이가 각각 1:2와 2:3으로 가장 단순한 자연수 비율을 이룰 때 생기는 순수한 음정이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들 음정을 활용하여 음악에 쓸 음들을 골라냈다. ‘순수한’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옥타브나 완전5도 간격의 음들을 동시에 소리 내면 ‘웅~웅~’하는 ‘맥놀이’(beat)가 발생하지 않아 깨끗한 울림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율’이나 고대 중국의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은 모두 완전5도 음정을 활용하여 음들을 구하는 조율법이다. 예컨대 ‘도’에서 ‘솔’을 구한 뒤, 다시 ‘솔’에서 완전5도 관계의 음인 ‘레’를 구하는 식이다. 이런 조율법을 통해 구해진 음들은 자연적인 울림이 살아 있다는 뜻에서 ‘순정률(pure temperament/ just intonation)’로 불린다.
순정률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완전5도 관계로 여러 음들을 구해도 옥타브 음과 정확히 일치하는 음은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완전5도를 거듭해서 구한 ‘옥타브에 근접한 음’과 ‘실제 옥타브 음’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피타고라스 콤마’라고 한다. 이러한 순정률로 음계를 구성하면 음계 내 구성음들 사이의 음 간격이 일정치 않게 된다. 이는 특히 조옮김과 관련한 문제를 초래하는데, 가령 순정률로 ‘도-레-미-파-솔-라-시’의 음계를 만들면 ‘도-레’ 사이의 음정과 ‘레-미’ 사이의 음정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순정률 조율 상태에서 ‘도’가 으뜸음인 조의 선율을 ‘레’가 으뜸음인 조의 선율로 한 음 올려 조옮김하려 할 경우, 두 선율 사이에는 차이가 생긴다. 물론 노래를 부른다거나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의 경우라면 연주 도중에도 음높이나 음정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조옮김이 가능하다. 조옮김의 순간 ‘레’를 기준으로 다시 음간격을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연주 도중에 음높이 조정이 불가능하다. 한 번 조율된 음들을 연주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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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음향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메르센(Marin Mersenne)이 디자인한 건반의 모습. <우주의 조화(Harmonie universelle)>라는 그의 대표 저서에 담긴 그림으로, 한 옥타브를 무려 서른 두 개의 음으로 분할하고 있다. 자연적 협화음을 살려보려는 이론적 시도지만, 실상 이러한 복잡한 건반으로는 섬세한 연주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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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이후 점차 악곡상의 조옮김이 빈번해지자 건반악기는 곧 난관에 봉착한다. 조옮김이 가능하고 화음들도 깨끗하게 소리날 수 있도록 조율하는 방법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자연적 음정들은 그러한 조율을 허락하지 않는다. 궁극의 해결책은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옥타브 내의 열두 반음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안적 조율을 가리키는 명칭이 ‘평균율’(equal temperament)이다. 평균율은 순정률의 ‘피타고라스 콤마’를 열두 반음 각각에 분산시켜 없앰으로써 옥타브와 완전5도의 불일치를 수학적으로 해결한다. 이로써 옥타브를 제외한 모든 음정에서 불협화가 발생하지만(모든 음에서 맥놀이가 생긴다) 참을 만한 수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평균율은 말하자면 조옮김의 편리를 위해 모든 음정을 일정한 반음 규격으로 재단하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조율법이다.
이론으로서 ‘평균율’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대부터 있었고, 16세기 중국에서 평균율 계산이 선행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음악 실제에서 쓰인 것은 서양 근대에서의 일이다. 18세기 전반기에 바흐(J.S. Bach)는 오늘날 ‘평균율 클라비어 모음곡’이라고 불리는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집을 두 번씩이나 써냈다. 이 작품의 의도는 길게 쓴 원래의 작품집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대충 옮기면 이렇다. “잘 조율된 건반, 또는 모든 온음과 반음을 두루 써서 연주하는 프렐류드와 푸가”. 바흐는 여기서 ‘C장조-C단조-C♯장조-C♯단조…’와 같은 순서로 차례차례 반음씩 조를 올려가며 스물네개의 조에 맞추어 각각 프렐류드와 푸가를 작곡해 놓았다. 사실상 음악작품이라기보다는 평균율의 이점에 대한 보고서나 매뉴얼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다. 평균율로 조율된 음계의 모든 음들(옥타브만 제외)이 자연적 울림과 맞지 않다는 점은 바흐에게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연적 울림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 수학적으로 구성된 새로운 미적 자연이 ‘키보드’ 위에 펼쳐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네마다 곳곳에 피아노 학원
건반악기-서양근대 ‘깊은 연관’
평균율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
12개 음들이 세계 표준음 구실
대의제 민주주의같은 근대모델
평균율 너머 다른 근대 가능할까
서양 근대음악은 점차 열두 개의 평균율적 분할음들과 그에 따른 조성체계로 종합되어 갔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부터 중산층 시민의 가정 악기로 부상한 피아노의 인기도 평균율의 확립을 도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면 모든 서양 관현악이 표준 A음과 평균율에 맞추어졌다. 평균율은 20세기 이후 서양을 넘어서 전 세계 음악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가고 있다. 마치 국제 표준시처럼 평균율의 열두개 음들은 세계의 표준음 구실을 하고 있다. 평균율이 세계의 음악적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평균율로 재구성된 음악적 자연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 소품들은 평균율이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옥타브 단위로 단순하게 패턴화된 피아노 건반은 고난도의 손놀림을 가능하게 해주며, 평균율로 고르게 조율된 음들은 현란하고 자유로운 조옮김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섬세한 음감을 저버린 조율법이 오히려 고도로 섬세한 작곡과 연주를 가능케 해준다는 점은 평균율의 역설이다. 이 역설은 한국의 전통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평균율은 특히 전통악기의 개량과 관련하여 줄곧 쟁점 사항이 되어 왔다. 서양악기와의 합주기회가 늘어나고 조옮김을 비롯한 서양식 음악어법을 도입한 창작곡 연주가 늘어나면서 한국의 전통음악계에서 평균율에 맞춘 전통 악기 개량과 실제적 사용이 빈번해지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의 예를 들면 12현 전통 가야금만이 아니라 평균율 25현 개량 가야금 연주가 이미 선택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한국의 바흐’에 의한 ‘평균율 가야금 모음곡’이 작곡될 만한 상황이다. 평균율에 적응해 가는 가야금 소리, 나아가 전통음악의 소리를 우리는 어떤 태도로 들어야 할까?
서양음악의 전반적인 문제를 살핀 1부의 연재를 마치면서 처음 제기했던 ‘조율’의 문제를 일단락지어야 할 듯하다. 일상어로서의 용법이 그렇듯 음악에서의 조율 또한 끝없는 타협과 절충의 과정으로, 사실상 ‘완벽한 조율’이란 있을 수 없다. 그저 더 나은 음악적 소통을 위한 끝없는 조율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평균율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처럼 서양 근대문화가 제시한 음악적 타협과 절충의 유력한 근대적 모델일 뿐이다. 이 점에서 평균율 너머를 상상하는 것은 근대 너머, 혹은 다른 근대를 상상하는 일일 것이다.
최유준 전남대 감성인문학연구단 인문한국(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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