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준의 공감하는 서양음악]
(19) 전지구화와 월드뮤직
음악교류의 세계사는 근대 이후 서양음악 문화의 국제적 헤게모니 장악과 함께 차츰 ‘서양에서 그 나머지 지역으로의 일방통행’의 면모를 보였다. 20세기 후반 음반매체의 발전과 문화적 전지구화 현상이 가속화한 이래 ‘월드뮤직’이라 불리어온 음악들은 이와 같은 전지구적 음악 교류사의 오랜 기억과 함께 근대음악의 식민주의적 정치경제학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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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공영라디오 방송 엔피알(NPR)의 인기 유튜브 채널 ‘엔피알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시리즈에 출연해서 화제가 된 한국의 록밴드 씽씽. 자메이카의 스카를 연상시키는 경쾌한 리듬 반주에 경기민요 메들리를 불렀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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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다룬 블루스와 로큰롤 음악이 인종차별의 사회적 장벽을 넘어서 쉽게 크로스오버되고 공유될 수 있었던 것은 유럽계와 아프리카계의 대중음악 양식에서 음악적인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수 세기에 걸쳐 행해졌던 노예무역과 식민주의의 역사 속에서 아프리카계 음악이 서양음악에 동화된 측면이 있는 것은 물론, ‘블루노트’와 같은 특징조차 컨트리나 블루그래스와 같은 유럽계 미국 음악에서도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그 음악적 공통분모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와 중세의 아랍 음악으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종족음악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컨트리나 블루그래스 음악에 큰 영향을 준 아일랜드 민속음악은 중세 후기에 본격적으로 유럽에 전파된 아랍 음악의 흔적(비음이 섞인 거친 가창 방식과 시김새 등에서)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데, 아일랜드가 유럽의 근대사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고립된 환경에 있었던 탓으로 보인다. 아랍 음악은 이집트 등지의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로도 전파되었고 이후 노예무역을 통해서 북미와 남미 대륙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랍과 인도의 음악이 실크로드를 타고 동아시아 음악문화에 미친 영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결국 아랍의 음악은 동서양 음악의 가교 구실을 했는데, 예컨대 아랍 지역에서 기원한 탄현악기 우드(oud)는 유럽으로 전파되어 류트가 되었고 중국으로 와서 비파가 되었다. 피터 밴더 메르베와 같은 음악학자는 서양 근대의 수직적 화성이 아랍이나 인도 음악의 드론(drone, 긴 지속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어느 경우든 20세기 이전부터 길고 지속화된 전지구적 음악 교류사가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교류의 세계사는 근대 이후 인쇄자본주의와 결합된 합리적 기보문화를 바탕으로 한 서양음악 문화의 국제적 헤게모니 장악과 함께 차츰 ‘서양에서 그 나머지 지역으로의 일방통행’의 면모를 보였다. 20세기 후반 음반매체의 발전과 문화적 전지구화 현상이 가속화한 이래 ‘월드뮤직’이라 불리어온 음악들은 이와 같은 전지구적 음악 교류사의 오랜 기억과 함께 근대음악의 식민주의적 정치경제학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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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발표된 폴 사이먼의 음반 <그레이스랜드>에 참여하여 일약 세계적인 뮤지션의 반열에 오른 남아공의 아카펠라 중창단 ‘레이디 스미스 블랙 맘바조’. 폴 사이먼과 함께 부르는 아카펠라 곡 ‘홈리스(Homeless)’에서 이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레이디 스미스 블랙 맘바조는 <그레이스랜드> 음반의 성공을 발판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벌여 지난해까지 거의 매해 그래미상의 후보로 지명되었고 네 차례에 걸쳐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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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스랜드’ 논쟁
‘월드뮤직’이라는 명칭은 1987년 영국에서 있었던 음악산업계 종사자들의 모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독립 음반사의 대표자들이 이전까지 ‘에스닉’, ‘인터내셔널’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던 이른바 ‘제3세계’ 기반의 혼종적 대중음악 음반들을 한데 묶어낼 수 있는 포괄적 장르 명칭의 필요성에 합의하면서 ‘월드뮤직’이라는 신조어를 고안했다. 여기서 ‘월드뮤직’은 사실상 서양의 ‘클래식’과 영미권의 ‘주류 대중음악’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을 가리킨다. 자신들의 주류 음악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음악을 한 가지 명칭으로 퉁치는 서양인들의 오만함이 느껴지는 명명법이다.
‘월드뮤직’이라는 용어의 출현은 음반산업계에서 비주류 대중음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데, 1986년에 발표된 폴 사이먼의 음반 <그레이스랜드>(Graceland)의 대중적 성공이 그 기폭제가 되었다. 폴 사이먼은 1960~70년대에 활동한 미국의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주축 멤버로서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와 같은 노래로 한국의 중장년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듀오가 해체된 후 사이먼은 솔로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듀오 시절의 히트곡 ‘엘 콘도르 파사’(남미의 민요 선율을 차용한)에서 선보였듯 남미의 민속음악이나 대중음악 양식을 자신의 음악으로 소화해내는 데도 일찍이 솜씨를 발휘해왔다. 1980년대 중반 우연히 남아공에서 녹음된 부틀렉(라이브 연주를 직접 녹음한 해적판) 테이프를 듣고 매료된 사이먼이 곧장 남아공으로 달려가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나 ‘미리엄 마케바’와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 뮤지션들과 함께 녹음한 음반이 <그레이스랜드>다.
당시 그의 남아공 방문은 그 자체로 정치적 논란거리였을 뿐만 아니라(남아공 정부의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에 대해 유엔의 남아공에 대한 경제·문화 보이콧 조처가 취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창작의 윤리와 관련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사이먼은 작품을 미리 완성하여 작곡한 뒤 녹음에 들어가는 기존 방식 대신에, 녹음실에서 먼저 남아공의 뮤지션들에게 즉흥 연주를 시킨 뒤 그에 어울리는 선율과 가사를 사후에 입혔다. 이러한 작업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반의 곡목들 대부분이 저작권상 사이먼의 작품으로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백인인 사이먼이 남아공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을 착취하고 도용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요컨대 폴 사이먼의 음반 <그레이스랜드>는 식민지의 원자재를 가공하여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얻어냈던 서양의 제국주의 모델에 기초한 문화적 신식민주의의 한 가지 사례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음악가들 사이의 즉흥적 협업이 이루어지는 대중음악 창작 과정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변호의 목소리도 많았다. 무엇보다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와 같이 남아공 현지에서만 알려져 있던 음악가들이 사이먼과의 음반 작업을 플랫폼 삼아 세계적 뮤지션으로 발돋움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고 그만큼 세계 음악시장의 다양성을 확장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논란 속에서도 폴 사이먼의 <그레이스랜드> 음반은 그래미 ‘올해의 녹음상’을 수상했고, 1000만장이 넘게 팔렸다.
♪ 월드뮤직과 퓨전국악
<그레이스랜드>의 사례에서 보듯 음반산업을 중심으로 한 초기의 ‘월드뮤직’은 서양 음악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음악적 절충이 이루어지거나 서양 청중의 취향을 고려한 영미권 프로듀서의 선택과 필터링 과정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청중 역시 ‘월드뮤직’ 하면 곧바로 ‘남미의 열정’을 떠올리는 등 색다른 음악적 이국취미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귀에 낯선 민속음악의 사운드들을 세심하게 제거한, 말하자면 패키지 해외여행객이 호텔 로비에서 들을 법한(서양음악적으로 순화된) 이국적 대중음악이 ‘월드뮤직’으로 간주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음반산업이 위축되고 라이브 무대와 축제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월드뮤직의 판도는 변화하고 있다. 월드뮤직은 좀 더 날것의 민속음악과 전통음악 사운드를 무대 위로 불러들이고 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월드뮤직 축제를 표방하고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월드뮤직’은 이제 한국의 전통음악과도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사물놀이와 이를 계승한 공명, 푸리 등의 타악그룹이 글로벌 월드뮤직 시장에서 반향을 얻은 것을 출발점으로, 최근에는 거문고팩토리, 잠비나이, 이자람, 블랙스트링, 씽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퓨전국악’ 그룹들이 글로벌 월드뮤직 시장을 배경으로 파격적인 음악 실험들을 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전통음악을 공부하는 젊은 음악인들 가운데 월드뮤직 시장을 의식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국내의 제한된 공연시장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가 국제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트마켓’ 등 한국 전통음악의 글로벌 유통을 위한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부가 문화정책적으로 한국 전통음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월드뮤직 시장은 여전히 영미의 팝음악이 주도하는 전체 글로벌 음악산업에서는 비주류 음악 시장일 뿐만 아니라, ‘워멕스’(WOMEX, World Music Expo, 1994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대의 월드뮤직 공연 마켓)로 대표되는 월드뮤직의 ‘중심’ 시장 또한 영미권과 유럽의 프로듀서들이 주도하고 있다. 좀 더 전통적인 사운드를 수용한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월드뮤직 시장을 배경으로 ‘한국의 레이디스미스 블랙 맘바조’를 꿈꾸는 젊은 ‘국악인’들의 자발적이고 거침없는 퓨전화 경향은 <그레이스랜드>가 촉발했던 문화적 신식민주의 논쟁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월드뮤직’을 다루는 서양의 책이나 사전의 ‘한국’ 항목에서는 판소리, 사물놀이 등의 전통적 음악양식과 함께 종종 신중현과 산울림, 김민기의 음악까지 다뤄지곤 한다. 그러니 ‘월드뮤직’을 특정한 음악 양식적 범주나 합리적인 장르 명칭으로 이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 전지구적으로 확장된 음악문화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재현의 정치다. ‘월드뮤직’이 모종의 이국적이고 낯선 분위기, 즉 음악적 타자성을 통해서 규정되는 한, 배후의 주인공은 여전히 그 ‘낯섦’을 규정하는 주체로서의 서양인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적 매개와 협상이 이루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비서양음악의 확산은 서양음악 그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문화적 전지구화 현상을 배경으로 월드뮤직이 키워놓은 글로벌 상상력은 오래도록 보편적 음악의 지위를 누려온 서양음악의 근대성을 새롭게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전남대 감성인문학연구단 인문한국(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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