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07 19:27
수정 : 2017.04.0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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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육수만 내면 쑥 같은 봄나물 된장찌개를 어렵지 않게 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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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권은중의 건강한 혼밥
4. 된장찌개 도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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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육수만 내면 쑥 같은 봄나물 된장찌개를 어렵지 않게 끓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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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빠지면 사람이 좀 변한다. 까닭 모를 활력이 샘솟는다. 요리를 막 시작했을 땐 이런 에너지가 넘쳐나 남의 집에까지 가서 출장요리를 하고 다녔다. 빈 수레의 과시욕이었지만 소문은 빨랐다. ‘아재’들이 나에게 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10여년 전 내가 콩나물무침이 먹고 싶어 요리에 도전했듯이 남자들의 도전해보고 싶은 음식은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가장 많이 레시피를 물어보는 음식은 된장찌개였다.
그러나 된장찌개는 유감스럽게도 ‘환상 속의 그대’다. 우선 우리가 깊은 맛이라고 느끼는 외식업소의 된장찌개는 몇년 묵은 집된장이 아니라 인공조미료에 기댄 경우가 많다. 아재들이 꿈꾸는 된장찌개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현실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이데아’인 셈이다.
이런 혼돈의 상황에서 내가 초보자들에게 주는 처방은 “된장을 잊어라”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된장찌개의 본질은 ‘엄마표 된장’에 깃든 것이 아니다.
된장은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동북아 지역 사람들 지혜의 결정체다. 영양학적으로 몸의 근간인 장기와 근육을 이루는 단백질은 하루 50~60g 정도 섭취해야 한다. 몬순기후였던 동북아 지역은 목초지가 발달하지 않아 가축의 고기나 우유 대신 단백질 공급원으로 콩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콩음식이 된장이다.
장황하게 먹거리의 역사를 늘어놓는 건 된장이 치즈와 비슷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치즈는 서양 요리의 메인이 아니다. 그저 거들 뿐이다. 된장도 비슷하다. 된장찌개에 해물을 넣으면 해물된장이 되고 차돌박이를 넣으면 차돌된장이 되는 이유다.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유기농 콩으로 만든 된장은 1만원쯤이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된장찌개를 현실로 소환하는 강력한 마법은 육수다. 물론 에스비에스 <생활의 달인>에 나올 법한 가공할 만한 육수는 ‘이데아표 된장’과 함께 잊어라.
대신 요즘 제철인 조개를 넣고 끓여라. 조개와 마늘만 넣으면 초등학생도 감칠맛이 폭풍처럼 넘치는 육수를 만들 수 있다. 석기시대 한강변 암사동에 조상들이 모여 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요즘 제철인 조개를 잔뜩 사다 냉동실에 얼려놓으면 가을까지 먹을 수 있다.
‘이데아’에서 ‘안드로메다’를 거쳐 땅으로 끌려 내려온 된장찌개님을 이제 꼭 안아주자. 꼭 안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된장찌개의 본질은 ‘계절’이다.
된장은 간장과 함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를 삶거나 데쳐서 먹기에 최적화된 동북아 지역의 핵심적인 소스다. 된장만 있으면 집 주변의 나물과 채소를 어떻게 하든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장독대를 신성시하며 틈만 나면 장독을 반짝반짝 닦던 것도 이런 까닭이다.
된장찌개는 봄에는 봄나물, 여름·가을에는 제철 채소, 겨울에는 말린 나물을 듬뿍 넣어서 된장과 끓이면 되는 거다. 조개에 새우에 게에 해산물도 듬뿍 넣으면 금상첨화다. 매일 먹는 된장찌개가 물리지 않고 오히려 솔푸드(위안음식)로 불리는 이유는 시간을 이겨낸 지혜의 소스에 그 계절에 가장 풍성한 재료를 버무려 끓여내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색다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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