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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26 19:26 수정 : 2017.05.26 19:49

멸치쌈장을 넣은 근대쌈밥과 부추무침.

[토요판] 권은중의 건강한 혼밥
(6) 푸른 쌈밥, 건강은 덤

멸치쌈장을 넣은 근대쌈밥과 부추무침.

나는 시골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전기도 버스도 없던 낙동강변 깡촌에서 살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지독하게 가난했다. 있는 거보다 없는 게 훨씬 많았다. 그러나 풍요로웠다. 덕분에 요즘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가난=풍요’의 등식을 어렴풋이 경험했다.

그래도 아쉬웠던 건 단거였다. 단것은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가던 읍내 장날의 엿이 전부였다.(그때 설탕은 자물통으로 채워놓았고 손님이 올 때만 꺼냈던 귀한 존재였다.) 단게 당길 땐 옥수숫대를 씹어야 했다. 쓴맛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황에서 올라온 서울은 설탕으로 쌓은 도시처럼 보였다.

이제 시골이 낯선 도시인이 된 나는 그때 시골에서 먹던 밥상이 가끔 생각난다. 가장 그리운 밥상은 요맘때부터 추수할 때까지 일자형 한옥 대청마루에 여럿이 앉아서 먹던 쌈밥이다. 그땐 상추마저 귀해 주로 열무와 얼갈이배추 그리고 호박잎, 머윗잎 따위를 먹었다.

이런 쌈채소를 대나무 소쿠리에 수북이 쌓아놓고 된장이나 쌈장을 넣고 크게 싸 볼이 터질 듯이 먹었다. 수육·제육볶음? 그건 잔칫날에나 볼 법한 메뉴였다. 쌈장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밥도 식은 보리밥이 많았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짜며 매우며 달며 쓴 오묘한 맛의 쌈밥은 전기도 버스도 설탕도 없던 깡촌에서의 유년을 내 인생에서 가장 넉넉했던 시기라고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틀면 환타가 나올 것 같던 서울로 전학 온 촌놈은 도시에 적응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쌈밥을 찾곤 한다. 상추 한 봉지면 한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는데다 먹고 나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 며느리에게는 절대 주지 않았다는 상추쌈을 한가득 먹고 시어머니보다 무서운 스트레스를 피해 잠을 청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초록빛 쌈채소는 이처럼 비타민·무기질이 풍부하다. 상추에 함유된 칼슘은 소고기는 물론 우유보다도 많다.

쌈채소는 쌈장으로 완성된다. 내가 즐기는 쌈장은 잔멸치와 간마늘을 된장·고추장에 듬뿍 넣고 살짝 볶아 아몬드를 넣어 먹는 멸치쌈장이다. 5분도 안 걸릴 만큼 간단하지만 감칠맛의 샘이다. 또 두부 반 모 정도를 으깨어 된장과 볶은 두부쌈장은 구수하고 심심한 맛이 일품이다. 냉장고에 1주일 정도 보관할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진다. 통조림 꽁치 몇 토막을 된장과 함께 볶다가 으깨 먹는 꽁치쌈장도 강추다. 이 쌈장은 파스타와도 잘 어울린다.

쌈을 많이 먹다보니 요령도 생긴다. 요즘에는 쌈뿐 아니라 국이나 찌개도 끓여 먹고 파스타에 넣어 먹을 수 있는 근대를 선호한다. 근대쌈은 둥글게 혹은 사각으로 모양을 내는 게 가능해 손님상 차림에도 어울린다. 데친 머윗잎에 진한 양념의 김치볶음밥을 싸서 먹으면 입이 상큼해진다. 호박이나 가지를 필러로 얇게 벗겨 팬에 노릇하게 구운 뒤 김말이처럼 돌돌 말아 먹는 호박·가지쌈은 보기도 먹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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