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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만원 6·17 걷기대회 만원런’ 행사 참가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동교동 지하철 홍대입구역을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촉구하며 양화대교를 거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축구장까지 행진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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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박종현의 공감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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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만원 6·17 걷기대회 만원런’ 행사 참가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동교동 지하철 홍대입구역을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촉구하며 양화대교를 거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축구장까지 행진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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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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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은 직무가 반복적이고 단순해서 대체가 용이한 근로 빈곤층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높여주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선진국에서는 격심한 양극화와 만성적인 불황의 흐름을 바꿀 새로운 희망으로도 대두하였다. 소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 노동자의 소득 및 고용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점은, 1994년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의 선구적인 연구를 기점으로,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렸을 때도 정책 의도가 달성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2015년 4월 당시 9.47달러였던 최저시급을 고용규모, 직원이 팁을 받는지 여부, 건강보험 제공 유무 등에 따라 2016년 1월까지 최대 13달러로 올린 시애틀의 실험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큰 폭의 최저임금이 예고되었을 때, 도산하는 사업체들이 속출하고 시애틀 경제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던 어두운 예언-또는 저주-도 많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3년째인 시애틀의 현실은 호황을 구가 중이다. 최근에는 그간의 효과에 관한 워싱턴대 연구팀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연구팀은 노동시간 및 소득의 변화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들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최저임금만 인상하지 않았을 뿐 나머지 상황은 최저임금 인상 전의 시애틀과 동일한, ‘가상의 시애틀’을 만들고, 시애틀의 노동 관련 현황을 이 ‘가상의 시애틀’에 비추어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연구팀의 핵심 결론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2016년 최저임금 대폭 인상 이후 시애틀의 시급 19달러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없었을 때에 비해, 시급은 올라갔지만 근로시간이 9% 감소했고 월 소득이 125달러나 줄어들었다. 둘째, 시애틀의 전체 노동시간이나 근로소득은 ‘가상의 시애틀’과, 곧 최저임금 인상이 없었을 때와 차이가 없었다. 셋째, 시애틀은 ‘가상의 시애틀’에 비해 시급 19달러 이상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소득이 많이 증가했다.
워싱턴대 팀의 이러한 결론은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시급 19달러 이하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하였다는 부분을 부풀려 최저임금 인상이 재앙을 가져왔다거나 그 위험이 입증되었다고 침소봉대한 언론-여기에는 미국의 ‘정론지’들도 포함된다-도 많았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그 결론도 근거가 박약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우선, 13달러로의 최저시급 인상으로 19달러 이상 노동자들만 좋아지고, 그 이하 노동자들의 처지는 오히려 악화하였다는 결론은 기존 연구들과 차이가 너무 크다. 다른 지역들의 최저임금 인상을 분석한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은 바로 윗 구간의 시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소득에 약간의 파급효과를 미칠 뿐 그 위로 갈수록 파급효과는 거의 없다. 워싱턴대 팀의 결과는 이러한 패턴들과는 너무도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경제적 메커니즘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결론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그렇게 줄어들었다면 커다란 소동이 벌어졌어야 하지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가상의 시애틀’을 만드는 방법상의 결함을 지적한다. 최근 시애틀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비교가 되려면, “대도시이고 호황이지만 최저임금은 올리지 않은 지역들”로 ‘가상의 시애틀’을 합성해야 한다. 하지만 워싱턴대 연구팀이 채택한 ‘가상의 시애틀’은, 대도시도 아니고 호황도 아닌 워싱턴 주 소재 지역들로 합성된 것이었다. 이는 현재의 시애틀을 ‘가상의 시애틀’과 비교할 때 19달러 미만 구간에서 소득이 더 적다는 결과는 최저임금 때문이 아니라 호황 때문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최근 시애틀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저숙련 노동자가 경제현장으로부터 쫓겨나서가 아니라 유례없는 호황으로 노동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이들이 더 높은 소득의 사다리로 올라간 결과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점을 여러 곳에 둔 프랜차이즈 사업체들을 누락함으로써, 최저임금 적용대상 업체 중 대략 60%의 사업체들만을 연구에 포함했다는 것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대형 프랜차이즈는 임금 인상 압력에 대응할 여력이 크며,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가장 많이 보는 집단들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누락의 문제점은 크다.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시애틀 시의 의뢰를 받아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버클리대 연구팀은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민감한 산업인 외식업에 초점을 맞춰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분석했다. 이때 이 연구팀은 비교 대상 설정과 관련해, 워싱턴 주가 아니라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이외에는 시애틀과 조건이 흡사한 대도시 지역들로 ‘가상의 시애틀’을 합성함으로써, 호황의 착시효과를 줄일 수 있었다. 이 연구팀의 결론은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을 줄이지 않은 채 그들의 소득을 개선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요컨대, 시애틀에 재앙은 없었으며, 적어도 아직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시애틀의 실험에는 계량분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보다 복잡한 변화들도 진행 중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은 요식업 분야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요식업의 경우에도 인상 폭은 크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저임금 전업 노동자들은 물론 최근 급증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는 관찰도 있다. 이들은 최저시급 인상을 통해 소득의 변동성을 줄이며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보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반면, 시애틀에서는 영세 사업체가 외곽으로 밀려나고 대형 사업체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 지역경제 생태계가 재편될 조짐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대기업이나 대형 프랜차이즈는 지불능력이 높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새로운 기회로 활용할 역량이 있다. 이와 달리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이 크지 않은 지역의 소사업체들은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애틀 정책당국이나 시민사회에게는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제어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시애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는 아니지만,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이 장기적으로 노동 절약적 기술진보 및 경제 전반의 생산성 상승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현장의 증언들을 보면, 사업주들은 저숙련자를 고숙련자로 대체하고는 있지 않지만, 자동화에는 관심이 대단히 높다. 테이블에 자동 주문이 가능한 태블릿을 비치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본격화되면 로봇 웨이터의 등장이 보다 앞당겨질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을 향한 대대적인 움직임이 이러한 기술혁신을 본격화하고 새로운 작업 방식과 새로운 사업 모델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경제의 신진대사를 촉진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만성적인 저성장에 놓인 미국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기술혁신의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본격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변화의 진통이 클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부작용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할 것이다. 구조조정의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새롭게 출현하는 일자리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직무의 교육 및 훈련을 제공하며, 노동 절약적 기술혁신의 열매를 사회 전체가 고루 향유할 새로운 사회혁신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도 최저임금 시급을 6470원에서 7530원으로 크게 올리면서 최저임금 1만원을 향한 여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기대도 크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비이성적 반응보다는 우리 사회를 한층 인간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공동체로 변모시킬 새로운 ‘모멘텀’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최저임금 1만원과 함께 새로운 ‘좋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이익과 손실을 경제주체들 간에 어떻게 공유하고 분담할 것인지에 관해 공정한 원칙을 세우고 일관성 있게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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