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8 19:36
수정 : 2017.09.1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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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이 지난 6월30일 오후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회적 총파업’ 본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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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nomy | 박종현의 공감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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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이 지난 6월30일 오후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회적 총파업’ 본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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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영속화시키는 주범은 노조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노조가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아 더 많은 파이의 생산을 방해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몫까지 빼앗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몇 가지 전제들이 깔려있다. 노조나 정부의 간섭이 없으면 기업이 잘되고, 기업이 잘되면 경제가 성장하며,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 문제와 소득분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논리들이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경험은 이러한 전제들과는 거리가 멀다. 높은 경제성장과 공정한 소득분배를 동시에 달성했던 1945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황금시대’에는 노조 조직률이 가장 높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도 컸으며, 소득세율도 대단히 높았다. 반면, 정부가 ‘더 작은 국가와 더 많은 시장’의 기치를 내걸고 노조에 대한 공격에 나섰던 1980년대 이후에는, 대기업의 수익은 늘어났지만 불평등이 확대되었고 경제 전반의 성장률마저 하락했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커지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보루인 노조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노조의 쇠퇴로 인해 전반적인 임금의 인하 압박이나 근로조건의 악화 시도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었고, 이러한 와중에 중산층의 몰락이 본격화되었으며,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의 상향 이동성도 현저하게 둔화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부자감세·규제완화·사회안전망 축소 등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들을 거리낌 없이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노조의 약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생산의 파이가 어느 정도 고르게 분배되고, 열심히 노력하면 각자의 정당한 몫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모두에게 널리 공유될 때 가능하다. 노조 조직률이 높았던 ‘황금시대’의 미국이나 노사공동결정제도를 통해 노조의 경영참여를 보장한 독일이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조는 여기에 더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활동과 결집된 힘을 바탕으로 정치 참여나 공익 제고에 적극 나섬으로써 시민사회의 든든한 토대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노조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조 때리기’가 일정한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조의 약화가 아니라 노조의 혁신이다. 만약 노조가 경제성장의 동반자 역할에 소홀했거나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바깥에 존재하는 다수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표하지 못했다면, ‘노조 때리기’가 아니라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요구해야 할 터이다.
물론 변화의 동력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다행히도 최근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조합원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사회적 역할도 강화하려는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매점·식당·의료·보육·먹거리·여행·연금 운용 등의 경제 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벌여 노동자의 복지를 충족시키고, 비정규직·퇴직자·해고자 등에게 양질의 일자리도 제공하겠다는 게다. 산업·고용 구조의 변화로 늘어나고 있는 시간제·파트타임·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담아낼 조직적 혁신을 꾀하고, 지역의 사회적경제와 협력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며, 국가 차원의 의제에도 적극 나섬으로써,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하려는 열망 또한 커지고 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세우려 했던 ‘노동해방’의 기치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로서의 자긍심도 사라지고 노동조합의 공공성도 의심받는 오늘날, 땀 흘려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 존중받고 기품 있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던 그 ‘불온했던 꿈’이 사회적경제와의 담대하고도 창의적인 협력을 통해 새롭게 결실을 맺기를 소망해 본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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