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18 16:57
수정 : 2017.12.18 17:10
|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한 음식점
|
Weconomy | 박종현의 공감의 경제
|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한 음식점
|
비트코인으로 세상이 뜨겁다. 비트코인은 국가나 은행과 같은 공신력 있는 제3자의 중재 없이도 재화나 서비스의 거래를 효과적으로 중개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등장했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의 높은 변동성이나 최근의 폭등세는 역설적으로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가격의 안정성이 확보되더라도 보편적인 교환 가능성의 기반이 없기에 법정통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본격적인 화폐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트코인보다는 그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의 가능성이 더 크다. 블록체인은 수많은 개인들이 거래나 특정한 정보를 함께 기록하고 인증하는 거대한 분산 장부이다. 각종 정보를 코드로 전환하는 데 수학적 암호풀이가 활용되며 그 기록이 수많은 컴퓨터들에 분산·보관되고 다수의 동의 없이는 변경할 수 없어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은 모든 종류의 정보를 그 속에 새겨 넣고 안전하게 보관함으로써 신뢰를 만들어낸다. 자동차·부동산·귀금속·병원 이용 등에 관한 모든 내역들이 블록체인을 통해 기록되고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기술에 힘입어 부동산 중개인·공증인·자동차 딜러·은행가·변리사와 같은 '신뢰 사업자'의 도움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해 각종 ‘중개인’들에게 구전을 ‘뜯기지’ 않고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이 분산 장부는, 사업상의 계약 내용을 담고 사전에 쌍방이 합의한 조건이 충족되면 컴퓨터가 그 계약을 자동으로 이행토록 프로그래밍된 ‘스마트 계약’을 통해, 경제활동 방식이나 회사의 형태를 바꿀 수도 있다.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우회해 사업의 효율화를 꾀하고, 업무들 중 반복적인 과정들은 계약으로 대체함으로써 회사의 군살도 뺄 수 있게 된다.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 계약들의 집합체로 재구성되고 기존의 회사와 산업을 새롭게 대체하는 과정에서 ‘파괴적 혁신’이 진행된다.
블록체인은 사물 인터넷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경제활동을 펼치는 세상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계나 사물에 고유한 신원을 부여하고 스마트 계약을 프로그래밍하게 되면 이들이 합리적인 경제주체가 되어 스스로 사업을 벌일지도 모른다. 스마트 계약의 지시를 받은 자율주행차가 손님을 태우고 다니다가 ‘이더리움’으로 받은 요금으로 수리를 받고 앞으로의 수요를 예측해 무인 주차장에 머무르거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남는 수익은 사람이 챙겨간다.
블록체인이 만들어내는 신뢰의 힘은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고 행정의 효율화를 가능케 하며 개인의 주권을 한껏 고양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토지대장이나 국가 기록물을 분산 장부로 관리하는 나라들이 이미 생겨났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투표도 시도되고 있다. 심지어 앞으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원을 직접 관리하는 길이 열리고 온라인상의 나라를 충성의 대상으로 선택하리라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국가의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 개인들이 분산 원장에 기초한 자생적 신뢰를 기반으로 계약을 맺고 거래를 통해 부유해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정부가 민주적이지 않고 개인이 도덕적이지 않다면, 블록체인의 신뢰에 기반한 세상은 강자의 권력만을 키우고 약자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도 크다. 스마트 계약이 내장된 스캐너를 탑재한 민간계약 보안로봇들이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자유와 풍요의 자동문 바깥으로 몰아낸 채 질서를 수호하는 공상과학 영화 속 디스토피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주는 신뢰와 협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블록체인은 분산 장부와 스마트 계약의 자동화를 통해 기록물의 진실성과 계약 이행에 관한 신뢰를 제공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신뢰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자생적으로 출현하고 발전하는 분권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인류에게 대규모의 협력을 가능케 할 ‘증강된’ 힘도 부여한다. 하지만 스마트 계약과 기계에 판단의 많은 부분을 위임할 경우 인간은 감성과 지성과 이성에 기초해 사회적 분업을 행하는 호모 사피엔스보다는 페로몬 교환을 통해 본능적으로 협력하는 곤충에 가깝다.
우리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블록체인의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 블록체인은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새로운 경제적·사회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속도전의 문제로 접근하지는 말자. 블록체인은 기술과 시장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사회와 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힘겹게 쌓아왔던 제도들을 자동화된 코드들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기계의 소유권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살아 숨쉬는 인간들의 진짜 신뢰와 협력의 기풍은 어떻게 함양할 것인지,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며 무엇에서 삶의 보람을 얻으려 하고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에 관한 다방면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