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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0 11:46 수정 : 2017.07.10 15:21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Weconomy | 김윤지의 문화경제 블랙박스_날씨 변화와 문화산업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경제학에서도 날씨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날씨 변화가 사람의 행동과 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보통 비가 오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여가시간을 줄인다. 이 현상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날씨와 여가생활이 관련 깊은 만큼 날씨가 문화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비가 오는 날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유료 전시 이용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통념과 달리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 특별 전시를 공개하는 게 관객을 더 많이 끌어모은다는 뜻이다.

최근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날씨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부터 경제효과까지, 날씨가 이토록 많은 뉴스를 제공한 적 있었나 싶을 정도다. 미세먼지가 짙게 깔리거나 비가 오는 것 같은 날씨 변화는 사람의 행동과 결정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들의 행동이 무언가 때문에 바뀌면 그에 따라 이익과 보수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경제학에서도 날씨에 관심이 많다. 대표적 분야가 날씨가 변할 때 사람들이 노동과 여가 가운데 무엇을 더 선택하는지를 파헤친 노동경제학 연구다.

노동경제학 연구의 기본 시각은, 임금이 변하면 사람들은 기존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을 다시 재분배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 시급 7천원을 받고 8시간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있고, 이 편의점에선 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부터 시급이 1만원으로 올랐다면 아르바이트생은 어떻게 반응할까. 시급 인상에 맞춰 전보다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아르바이트생은 전에도 8시간보다 더 일해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시급이라면 8시간 일하고 여가를 갖는 게 본인에게 최적이라 생각해 딱 그 시간만큼 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시간당 임금이 오르면서 조건이 바뀐다. 전에는 노동 대신 택하는 여가의 비용이 시간당 7천원이었지만 이제는 1만원으로 높아진 셈이다. 이 경우 더 비싸진 여가를 포기하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게 ‘합리적’ 인간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설명이었다.

이때 임금 부분을 날씨로 바꿔 넣어도 재미있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모처럼 쉬는 날에 비가 오면 매우 아쉽다. 야외로 캠핑 갈 계획이라도 세웠다면 더욱 그렇다. 택할 수 있다면 비가 오는 날 일하고, 맑게 갠 날 놀러 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맑은 날 놀러 가기 위해 비 오는 날 평소보다 더 많은 일을 해놓을 수도 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비 오는 날 실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은지, ‘합리적’ 인간들의 행동을 확인하려는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날씨가 바뀌면 노동시간도 변화

안타깝게도 그런 상황이 만족스럽게 검증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날씨에 따라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일해야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데, 실제 그런 직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찾아낸 업종이 택시 운전기사, 어부, 택배 기사 정도다.

이런 직종을 택해도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개인 ‘성향’이란 변수 때문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맑으나 흐리나 오로지 일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사람들이라면 선택 변화 측정이 불가능하다. 이런 직종이라도 자의든 타의든 목표 임금 또는 노동량이 정해진 경우가 많았다. 한 달에 얼마를 벌겠다, 혹은 몇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목표량이 있을 때는 날씨에 따라 자유롭게 일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모습을 포착하기 어려웠다.

악조건 속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보인 연구도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마리 코널리 교수는 팝그룹 유리스믹스의 노래를 제목으로 딴 논문(‘Here comes the rain again’)을 통해 사람들이 비 오는 날 30분 정도 일을 늘리고 여가를 줄인다는 것을 검증했다. 이 현상이 남성에겐 강하게 드러나는 반면 여성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를 파헤쳐보니, 남성은 야외 여가활동을 많이 해 날씨와 여가 선택의 관계가 깊은 반면, 여성은 실내 여가활동을 많이 해 날씨에 좌우되는 성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날씨와 여가생활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포착한다면 문화산업에도 적용할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2016년 영화 <부산행>의 1천만 관객 돌파 뒤에는 2016년 기록적인 무더위의 힘이 컸음을 밝힌 바 있다(<이코노미 인사이트> 제77호 ‘애국심도 울고 간 폭염의 힘’ 참조). 영화 개봉 초반 대적할 만한 영화가 없는 상태에서 기록적인 무더위로 관객이 극장을 많이 찾으면서 <부산행>은 1천만 관객을 쉽게 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관 관객 수로도 무더위와 흥행의 관계는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한국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총 2억1700만 명이었다. 그런데 7월과 8월의 관객 수가 5600만 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을 넘었다. 이제 더우면 시원한 극장으로 피서를 가는 게 보편적 일이 돼, 무더위가 영화 흥행의 한 변수가 된다는 이야기다.

무더위가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비는 어떨까.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의 해럴드 커프 교수가 강우량과 박물관 방문객 수의 관계를 추정한 연구가 실마리를 줄 듯싶다. 이 연구는 강우량을 하루 단위가 아니라 오전에 왔는지, 오후에 왔는지, 하루 종일 왔는지 등으로 나눠 살펴보았다는 특징이 있다. 언제 비가 오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전체적으로 언제든 비가 오면 하루 박물관 방문객 수가 약 2.8%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살펴보면, 오전 방문객 수가 비가 오지 않는 날에 비해 약 5.7% 늘어나 전체 방문객 수 증가를 이끌었다. 반면 오후 증가율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오전엔 박물관에 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비가 오는 시점을 나눠 살펴보면 더 다양한 행동 패턴이 나타났다. 오전에만 비가 오고 오후에는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오전(7.4%)과 오후(2.2%) 방문객이 모두 늘었지만, 오전 증가율이 더 높았다. 그런데 오후에만 비가 올 때는 오전 방문객(4.3%)은 늘었지만 오후 방문객 증가는 유의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가 올 때는 오전 방문객(5.4%)은 늘었지만 오후 방문객은 오히려 2.3% 정도 줄었다. 전반적으로 오전 방문객 증가는 모두 나타나지만 오후 방문객은 큰 편차를 보이는 것이다.

비 오면 높아지는 유료 전시 이용률

방문객이 오전과 오후에 일관되지 않은 이유는, 비가 올 때 선택의 방향이 사람들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전날 밤 뉴스에서 내일 비가 온다는 이야기를 접했다고 생각해보자. 내일 비가 온다니 야외활동 대신 박물관에나 가자고 결정할 수 있다. 특히 오전에만 비가 온다는 예보였다면 오후 야외활동을 위해 오전 박물관 방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오후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을 접하면, 실내든 실외든 나가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의 오후에는 오히려 방문객이 줄기도 한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접해도 오전에는 실내 활동이든 실외 활동이든 뭐라도 해보자는 의지가 있지만, 오후쯤 되면 오늘은 접어버리자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 연구는 비 오는 날에 사람들이 박물관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고 유료 특별 전시 이용률이 더 높아지는 것도 밝혀냈다. 오전에만 비 오는 날에 오전 유료 특별 전시 이용률이 평소보다 12.9%나 높아졌다. 이는 비 오는 날 방문객이 늘어난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거나, 원래 박물관에 가기로 한 사람이 시간만 바꿔 온 경우가 많았다면 박물관 경유 시간이나 유료 특별 전시 이용률이 특별히 높아지기 어렵다. 그런데 이 결과는 비 오는 날 박물관에 온 경험이 있던 지역민이나 비 때문에 여행 일정을 늘리는 관광객들의 박물관 재유입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물관에 여러 번 오는 사람들이 특별한 전시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는 개인의 인생에 관련된 중요한 결정과 판단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훠턴경영대학원(와튼스쿨)의 유리 사이먼슨 교수는 ‘대학 가기 좋은 날씨’(Weather to go to college)라는 논문을 통해, 맑은 날보다 흐린 날 대학에 예비 방문을 했던 지원자가 더 많이 등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흐린 날 대학을 방문한 지원자가 그 대학의 학구적인 면에 매력을 더 크게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맑은 날에 대학을 방문하면 학구적인 면보다 다른 점에 더 영향을 받고, 실제 등록 여부 결정에서 학구적인 면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선발자 처지에서도 맑은 날보다 흐린 날에 인터뷰할 때 학문적으로 더 유능한 학생을 뽑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도 발표했다. 날이 흐릴 때 지원자의 학문적인 면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자신의 학문적 능력을 더 돋보이고 싶다면 흐린 날을 택하라. 특별한 전시, 특별한 영화를 공개하고 싶다면 비 오는 날을 택하라. 물론 비 오는 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사람들이 좀 까칠해진다는 점을 잘 이겨낼 수 있다면 말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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