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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4 20:09 수정 : 2018.07.04 20:16

김보통 그림.

김보통 그림.
핫도그가 유행이다.

심심치 않게 핫도그 체인점을 마주친다. 예전에 노점에서 팔던 것과는 달리 위생적인 시설에서, 주문 즉시 튀겨주니 맛도 좋다.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해 고르는 재미까지 있다. 왜들 그렇게 사 먹는지 이해가 간다. 십수년간 한 번도 사 먹지 않은 나조차도 근래 종종 사 먹는다. 식사에 가까운 음식이지만, 그래도 끼니를 핫도그로 때우진 않으니 디저트로 쳐도 될 법하다.

별 상관은 없지만, 우리가 핫도그라 부르는 것의 정식 명칭은 ‘콘도그’라고 한다. 1830년께 텍사스 공화국(19세기 존재했다가 미국에 흡수된 나라) 시절 독일계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음식이라고 하는데, 어찌 된 게 한국에서는 핫도그라고 불린다. 원래의 핫도그는 빵을 반절 갈라 그 사이에 소시지를 끼워 넣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도 핫도그라고 부른다. 헷갈리지 않기 위해 ‘미국식’이라고 덧붙여 말하기도 하는 걸 보면, 종래의 핫도그는 ‘한국식’이라는 것인가 보다. 사실 어찌 부르건 상관없다. 핫도그는 핫도그일 뿐이니까.

어릴 적 이모 집에 가면, 면 내에 있는 오락실에 가곤 했다. 오락실이라고 해봤자 10평이나 될 법한 공간에 오락기가 듬성듬성 예닐곱 개 놓여있을 뿐이었다. 최신 게임도 없어 몇 해를 가도 여전히 ‘테트리스’와 ‘보글보글’과, ‘곤드라’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20여분을 걸어 도착해 그냥 가기는 아쉬워 동생과 함께 몇 판을 하곤 했다. 재미는 없었다. 허망했다. 시간도 돈도 아깝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잘해봤자 현란한 솜씨에 감탄해줄 구경꾼이 없으며, 인기 많은 게임에 돈 걸어놓고 기다리는 기대감도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있는 것이라곤 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며 하품을 하는 주인 할아버지뿐이었다. 그마저도 수시로 자리를 비워 빈 창고에 와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의무감에 오락을 하고 나오면, 맞은편 분식집에 갔다. 말이 분식집이지, 겉으로 봐선 그 어디에도 분식집이라는 정보가 없어 처음에는 있는 줄도 몰랐다. 부실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 한 번도 손님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매장 안에 우울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주머니만이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먹는가 하면 바로 핫도그다. 가격이 50원이었다. 그 때로서도 매우 쌌다.

하지만 싼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서울에서 사 먹던 핫도그의 반 토막밖에 안 되는 길이에 굵기는 두 배 넘게 굵었다. 처음엔 ‘길이가 짧은 대신 두꺼운 소시지를 쓰는 건가’ 싶어 내심 기대했는데, 한입 깨물어보니 입안 가득 들어오는 것은 밀가루 반죽뿐. 소시지는 없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 한입을 먹어도 소시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다시 한입을 베어 물자 그제야 나타나는데, 내가 알던 그 소시지가 아니다. 돼지고기로 만들어 육즙이 터져 나오는 소시지가 아닌, 어육으로 만들어져 달걀 물을 입혀 지져 도시락 반찬으로 먹던 빨간 소시지가, 몽당연필만 한 크기로 깎인 채 젓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그 조그만 소시지를 신묘한 기술로 주먹만 하게 튀겨 놓고 핫도그라고 팔고 있는 것이었다.

핫도그가 아닌 듯싶지만 아슬아슬하게 핫도그다. 내가 알던 것과는 현저히 다르지만 일단은 밀가루 튀김 안에 소시지가 들어는 있고, 조리 과정 자체도 동일하다. 일종의 변형인데, 그것이 악의적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황망한 우리의 표정을 보고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핫도그라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서울에서 핫도그라는 음식을 파는데, 이러이러하더라’라는 말만 듣고 나름 창의력을 발휘해 재현해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도 만들어 놓고 보니 이걸 돈 주고 팔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50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을 책정한 것이겠지.

그래서, 핫도그는 뭐가 됐건 핫도그다. 감자튀김이 덕지덕지 붙어 있건, 소시지 대신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 있건, 내 새끼손가락 두 마디만 한 빨간 소시지가 들어 있건. 핫도그라고 하고 판다면, 핫도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먹으면 세계는 평화롭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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