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7 20:37
수정 : 2017.09.27 20:42
[ESC] 생활력기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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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 전 미국무장관이 2008년 11월7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로 열린 초청강연회에서 연설하던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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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일상기술연구소’ 팟캐스트 제작 과정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보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재를 만들기 위해 그간 만들었던 팟캐스트의 대본들을 정리해보니 일상기술을 보유한 게스트들에게 건넸던 질문의 분량이 꽤 됐다. 평이한 인사말 같은 질문부터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던 유쾌한 질문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깊이있는 질문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했다. 나는 이 질문들을 같은 성격끼리 묶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면, 핵심을 꿰뚫는 일상기술 비법 하나쯤은 확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강생들이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필살기, 즉 ‘좋은 질문을 잘 하는 기술’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내가 던진 성공적 질문들을 범주별로 나누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레고블록처럼 한 번에 끼워 맞춰지는 스킬 세트 같은 필살기는 정리가 불가능했다. 모든 좋은 질문들은 상대방의 이야기와 그 맥락 속에 몰입한 가운데 길어 올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엑셀로 정리한 실제의 질문 목록을 앞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자니 ‘잘 묻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던 얘기가 절실하게 와닿았다. 확실히 좋았던 질문들은 공들인 사전 인터뷰의 결과물이었다. 직접 만나 귀를 기울였거나 상대방의 책이나 기사를 자세히 조사했거나 최소한 서면으로라도 캐묻고 대화한 과정이 녹아 있는 것들이었다. 결국 ‘좋은 질문을 하는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잘 듣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시엔엔>(CNN)의 인터뷰 전문가 프랭크 세스노는 저서 <판을 바꾸는 질문들>에서 ‘경청의 황금률은 남들이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대로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잘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좋은 질문과 좋은 경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빙 돌기 때문이다. 경청은 좋은 질문을 이끌어낸다. 좋은 질문이 이끌어낸 좋은 답은 질문자가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적극적으로 깊이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이 선순환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그는 미국 국무장관을 역임한 콜린 파월의 ‘30% 법칙’을 소개한다. 회의를 주재할 때 총 회의시간의 30% 동안만 말하는 법칙이다. 이 원칙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면 자연스럽게 남은 70%의 시간 동안은 타인의 말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1분만 말하고 2분간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회의뿐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 친구 사이에도 응용할 수 있다. 내 얘기를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여주는 걸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고 보니 좋은 질문의 기술과 좋은 경청의 기술이 합쳐져 좋은 관계의 기술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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