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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왕의 피라미드(높이 146m)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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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씨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도전기 ⑤ 이집트 사하라 사막 240km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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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왼쪽)와 티티 무덤속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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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 이집트 사하라 사막 240km 마라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집트의 카이로 시내는 아직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도시였다. 낡은 건물들과 뿌옇게 쌓인 먼지는 낡은 회색 도시를 연상케 했다. 신호등이 거의 없는 도로에는 사람과 자동차들로 복잡하게 엉켜있어 위험해보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마라톤’으로 불리는 사하라마라톤은 사막마라톤을 꿈꾸는 마스터스들에겐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난해 처음 도전한 사막마라톤도 사하라였다.
이번이 두번째. 무엇이 나를 자꾸 이곳으로 당기는 것일까?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사나이다운 로망 때문일까? 아니면 사막이 품고 있는 무한한 도전에 대한 욕구 때문일까? 고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이집트에는 약 90여개의 피라미드가 존재하고 그 중 기자 지구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고 웅장하다. 스핑크스,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무덤, 이집트 공주 무덤인 테펄티티 무덤 속의 상형문자와 벽화, 람세스 상 등과 이집트 박물관 유물들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웠다. 특히 테펄티티 무덤속의 벽화는 그동안 책으로만 구경했던 이집트 미술을 직접 눈으로 구경한 기회가 돼서 ‘날라리 그림쟁이’인 나에게는 너무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유물들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도굴되고 무너지고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 있는 모습을 볼 때에는 위대한 이집트 문명 뒤에 온 또 다른 이집트 문명의 아픔을 상징하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함이 더했다. 10월27일 = 대회 숙소인 모벤빅 호텔은 카이로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기자 지구에 위치해 있다. 호텔에서는 멀리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오고 수영장, 헬스, 테니스 코트, 축구장 등이 갖춰진 리조트 이면서 숙소가 깔끔해 마음에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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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에서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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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해보니 스텝, 자원봉사자 등 대회 관계자들과 익숙한 선수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고 쉬고 난 뒤, 저녁 7시가 되어 배낭 검사가 이루어졌다. 대회 때 마다 하는 짐 검사이지만 아직도 물건을 빠트리거나 실수를 하곤 한다. 짐 검사를 하면서 나의 반가운 친구인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를 만났다. 프란체스코는 중국의 고비사막과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을 같이 뛰면서 서로 친하게 되었다. 나보다 경험도 훨씬 많고 순위에 집착하기보다 힘들 때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정말 멋쟁이 친구이다. 그는 고비사막 때는 아쉽게 2위에 그쳤고 칠레대회 때는 운이 따르지 않아 3위에 머물렀다. 10월28일 =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10시에 버스를 타고 다시 사막으로 이동했다. 7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창밖의 세상은 1년 전에 보았던 풍경들이라 그런지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사하라 사막은 아름다운 풍경도 펼쳐지지만 때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구경할 수 없는 삭막함과 쓸쓸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해가지고 어두움이 다가와서 도착한 캠프에는 날씨가 많이 쌀쌀해, 2005년 사하라 레이스의 50도가 넘는 그 ‘뜨거움‘은 없었다. 어두움이 완전히 깔리고 난 뒤 저녁 식사를 하고, 내일의 레이스를 위해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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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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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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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ge1] 30.8km =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리고 난 후 사진을 찍으며 서로 열심히 하자는 격려를 나눴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240km레이스는 시작됐다. 어제까지만 해도 첫날 코스가 50km로 계획이 잡혀있어 첫날부터 힘든 레이스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지만 아침에 30.8km로 코스가 줄었다는 소식에 안심이 되었다. 배낭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cp1 까지는 무난한 레이스였다. 가끔씩 모래 속으로 발이 빠져들긴 했지만 코스는 쉬워보였다. 바람도 불어 날씨는 작년처럼 덥지는 않았다. cp1 을 지나면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와 덴마크의 지미라는 친구와 같이 달리게 되었다. 얼마를 달리다 프란체스코가 힘이 들었는지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했고 덴마크의 지미는 조금씩 앞서가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코에게 빨리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고 지미를 따라 붙었고 한참을 그렇게 같이 달렸다. 지미라는 친구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고비사막과 아타카마 레이스를 보았다고 하면서, 나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잘 달린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그렇게 나도 웃으며 미소를 보여줬지만 그 잠깐의 미소는 금방 다가올 고통의 여정을 알지 못했다. cp2을 지나면서 지미가 많이 앞서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몸에 힘이 빠지고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가지 못하고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다. 이미 신발 속에는 모래가 가득 들어와 걷기조차 힘들 정도였지만 신발을 벗고 모래를 털어야겠다는 마음의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이미 거의 바닥이 난 빈 물병을 빨아 봤지만 타는 목마름만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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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사막을 달리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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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사막을 달리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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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다가온 프란체스코가 "괜찮냐"고 물어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난 괜찮다"고 하면서 빨리 가라고 했지만 이미 몸은 많이 지쳐 있었다. 한사람 또 한사람 나를 앞지르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적으로도 더 힘들어져 간다. 첫 날부터 이렇게 힘든 레이스가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겨우 캠프에 도착했지만 빈혈과 몸살 때문에 약을 먹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저녁이 돼서야 몸은 괜찮아졌지만 너무 힘든 신고식을 해서 인지 앞으로의 레이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stsge2] 32km = 아침에 일어나니 모든 게 괜찮아졌고 언제 내가 아팠냐는 듯 금세 몸이 회복되는 걸 보면서 내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 오늘 달리는 코스는 ‘사막의 남극’이라는 곳인데, 사막 한 가운데에 마치 조각 작품처럼 솟아 있는 돌기둥들은 오랜 기간 동안 바람의 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해서 생겨난 거라고 한다. 색깔이 하얀 돌기둥들은 멀리서 보면 얼음 조각처럼 너무나 곱고 제각각 아름다운 형상들을 하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자연의 신비로움은 정말 대단 한 것 같다. 오늘은 바람이 없어 어제 보다는 덥다고 느껴지는 날씨다. cp1까지는 프란체스코, 지미랑 셋이 짝을 이뤄 같이 달렸다. cp2을 지나 캠프까지는 약간 길게 느껴졌지만 모래가 많이 없어서 좋았다. 몸 상태도 괜찮아 혼자 앞서가기 시작했다. 몸은 많이 지쳐갔지만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벗 삼아 힘을 냈다. 프란체스코보다 5분 앞서 먼저 들어와 어제 뒤쳐져 있던 기록도 많이 단축시켰다. 주위에서는 조금 더 힘을 내서 1등을 하라고 하지만 우승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었다. 물론 사막레이스에서의 우승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막레이스를 통해 1등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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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날 선두로 들어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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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게 있어 사막레이스는 재미있게 맘껏 자유롭게 달리면서 즐기다 가는 것이 우승보다도 더 의미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때론 힘들게 경쟁하면서 순위에 집착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사막을 맘껏 구경하며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하다. 프란체스코가 우승을 해도 나에게는 기쁜 일이고 내가 1등을 한다고 내 인생이 바뀌지도 않으며 꼴찌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도 않는다. 그냥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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