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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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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식씨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도전기 ⑥ 이집트 사하라 사막 240km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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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사막의 모래바람은 모든 것을 삼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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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3] 38km = 대회 아침 출발 30분 전에 매일 그날의 코스에 대해서 브리핑을 한다. 오늘 레이스는 모래언덕을 지나는 구간이 있고, 레이스 지도에는 ‘Extreme difficult’ 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힘든 레이스가 예상됐다. 초반에는 평평한 지역이라 코스가 쉬웠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모래평원이었다. 모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순위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오래 구경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첫째 날 둘째 날 경험 미숙으로 약간 뒤쳐져 있던 지미가 사막에 적응해가면서 속도를 많이 내기 시작했다. 지미는 사막레이스에는 처음 참가하지만 많은 레이스 경험이 있고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30분에 뛰는 전문 런너 이상의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cp1을 지나 한참을 달리고 난 후 마치 모래산맥처럼 보이는 풍경들이 나타났다. 대회코스를 표시하는 빨간 깃발들이 모래 언덕 쪽으로 향해 있었다. 저 모래 언덕들을 건너야 된다는 생각이 ‘끔찍함’으로 다가왔지만 힘든 순간들을 즐기는 게 사막레이스의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닌가? 어차피 ‘고통은 순간’일 뿐. 모래언덕에 다가와서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높게 느껴졌고 한 발짝 오를 때 마다 발은 미끄러져 내려와 마치 제자리걸음 마냥 힘들었다. 언덕 위에는 바람도 많이 불어 얼굴과 팔다리가 따갑게 느껴 질 정도로 모래가 날려 레이스는 더욱 힘들어졌다. 여러 개의 모래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반복하고 나서야 cp2에 도착했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지미와 프란체스코가 괜찮냐고 묻는다. 언제나 그렇듯 미소로 답할 수밖에. 대회 3일째. 이제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간다. 하지만 일찍 들어와서 같이 뛰었던 친구들이랑 얘기도 하고 서로 장난도 치며 재미있는 휴식을 취한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때론 너무 지쳐 쓰러져 오후 내내 잠이 들어버리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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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사하라 사막을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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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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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4] 38km = 대회 4일째, 이미 사막의 기후에는 적응해 있지만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뭘 먹어도 토할 것만 같고 많이 지쳐가고 있다. 오늘은 바람하나 없는 가장 더운 날이 될 것 같다. 초반부터 조금 힘이 들었지만 cp2까지는 지미랑 프란체스코랑 같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cp2에 도착해보니 자원봉사자로 같이 간 민영이가 괜찮냐고 물으며 얼굴에 물을 뿌려주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특히 가끔은 외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런 사막 한가운데서 힘이 들 때 누군가 옆에서 격려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cp2를 지나 조금 달리다 지미와 프란체스코에게 먼저가라고 하고 난 다시 뒤쳐져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보충제도 먹지 못한 게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며 힘든 레이스가 된 이유였던 것 같다. 오늘까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프란체스코가 20여분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지미는 3분 차이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캠프에 도착한 이후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오후 내내 누워 있었다. 많이 힘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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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사막을 혼자 달릴 때 난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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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5] 90km long day = 롱데이 날은 2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출발하는 데 오늘은 선두그룹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6시에 출발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잠이 깨었다가 먼저 떠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난 후 다시 누워 잠시 잠을 청했지만 많이 피곤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은 되었지만 곧 회복 되리라 생각하며 사진을 찍으며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한국에서는 롯데월드에 근무하는 정수철씨와 아이언맨 동료인 여상훈씨랑 3명이 남았다. 9시가 되어서야 출발했고 벌써부터 뜨겁게 느껴지는 태양은 오늘의 레이스가 힘들 거라고 경고하는 듯 했다. cp1까지는 오르막이 많고 발이 모래 속으로 많이 빠져들어 힘들었다. cp2에 가까워지면서 체력이 많이 소모된 듯 싶더니 온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너무 힘든 레이스가 됐다. 여러 번의 사막 레이스를 경험했지만 롱데이 날 초반에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지미와 프란체스코에게 먼저 가라고 했고 난 다시 뒤쳐져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순위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남들과 같이 가다 때론 이렇게 뒤쳐져 힘들게 갈 때는 외롭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도 더욱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남들보다 앞설 때도 있고 조금 뒤처지기도 하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닌가? 그렇다고 세상이 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일등으로 달리든 꼴찌로 달리든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즐기며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흔한 얘기지만) 순위는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숫자일 뿐인데.. 얼마를 달렸을까? 끝없는 사막이 나타날 뿐 cp는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몸은 계속 지쳐가고 있었고 ‘고통은 순간‘일뿐 지금 이 순간만 견디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계속 달렸지만 몸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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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달리는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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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체크포인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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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내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음료형태의 보충제만 먹다보니 구토증상까지 나타났다. cp6에 도착 한 후 몸 상태가 너무 나빠 약을 달라고 했다. 물을 마시며 조금 쉬었지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어 하면서 계속 사막에 오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끝까지 완주를 한다면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많은 생각과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60km가 넘는 거리를 참고 잘 견뎌왔고 앞으로 약 25 km 만 더 달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 본능적으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걷다보니 몸 상태는 괜찮아졌다. 날씨는 바람이 불어 많이 서늘해져 달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웠다.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 한 거 같아 다시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앞에도 뒤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사막을 혼자 이렇게 ‘쓸쓸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외로움‘은 나에게는 또 다른 ’자유‘인지도 모른다. 해가지기 시작하면서 석양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고 그 풍경은 마치 영화 속 풍경처럼 너무나 곱고 아름다웠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멀게만 느껴지는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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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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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문민영)가 작은 오아시스 마을에서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누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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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라인에서 레바논의 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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