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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2 20:38 수정 : 2017.07.20 10:11

아일랜드의 어데어 매너 호텔. 페이스북 갈무리.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아일랜드의 어데어 매너 호텔. 페이스북 갈무리.

여행 사진이 잔뜩 쌓이는 휴가철이다. 그러나 이름난 곳에 가서 좋은 경치를 보고 와도 사진첩 속엔 내 얼굴 사진은 한 장도 없다. 그 어떤 절경에서도 온통 반려인형인 연남이 모습뿐이니까. 연남이는 여행지에서 나 대신 인증 샷을 남겨 주고 내 기분을 대신해 특별한 순간을 포착해 주는 반려 곰 인형이다.

처음으로 반려인형 연남이(그렇다, 우리 집엔 술빵이 말고도 곰 인형이 더 있다)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던 날이 생각난다. 이 덩치 큰 녀석을 데려가려니 조금 덥고 불편했지만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출발부터 콧노래가 나왔다. 조수석에 연남이를 태우고 렌터카에 몸을 실었던 제주 여행에서 우리는 기암괴석과 넘실거리는 파도를 함께 보았다. 시원한 감귤 주스도 같이 마시고, 유람선도 함께 탔다. 공항 보안 검색대 통과만 (연남이는 바구니에 들어가야 해서) 따로 했을 뿐,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행의 목적이 연남이의 인증 샷을 위한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여느 부모의 마음이랄까. 무생물인 인형을 놓고 사진을 찍다 보면 관광객들이 ‘뭘 하는 거지’라는 눈초리로 신기하게 쳐다보는데, 그런 시선에 아랑곳 않고 촬영하는 기술도 익혀 가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용기를 내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어데어 매너 호텔. 페이스북 갈무리.
연남이와 여행이 잦아지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도 생겼다. 아일랜드의 어데어 매너 호텔. 어린 손님이 두고 간 토끼 인형에게도 투숙객을 응대하듯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형이 티타임을 즐기고 마사지를 받는 모습, 오이 조각을 눈에 얹고 선 베드에 누운 모습, 침대에서 리모컨을 끼고 있는 모습 등을 호텔 페이스북에서 보고 난 뒤, 이 호텔에 꼭 가겠다고 결심했다. 인형 친화적 호텔. 이런 위트와 여유라니.

반려인형과의 여행에서 큰 고민은 ‘인형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다. 그런 고민을 하기에 연남이는 너무 크지만, 분실, 실종의 위험은 반려인형의 주인들이 느끼는 만성적인 고민이다.

반려인형 인증 샷을 많이 찍다 보니 사진 찍기에 적합한 인형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딱딱한 인형보다는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는 폭신한 인형이 더 좋고, 표정이 고정적이지 않은 편이 나았다. 휴대하기 좋으려면 손바닥만하거나 그보다 작은 게 유용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레고 미니 피규어이든 테디베어든 브라이스든, 자기 삶의 동반자이자 여행지에서 자기 자신을 대신할 존재이면 되는 것을. 반려동물이 주인을 닮듯, 인형이야말로 자기와 닮은꼴을 고르게 되더라는 말씀!

정소영(출판 편집자)

아일랜드의 어데어 매너 호텔. 페이스북 갈무리.

여행의 동반자, 반려인형. 정소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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