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16 20:00
수정 : 2017.08.1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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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집 다이노벰버(dinovember.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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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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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집 다이노벰버(dinovember.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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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인형이 살아 움직이면 어떨까. 정말 좋겠지. 내가 잠든 사이에 우리 집 곰돌이들이 슬금슬금 일어나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종종 한다. 침대에서 같이 잠들었는데 아침에 술빵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은 내 삶의 윤활유 같은 것이다.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같은 영화를 볼 때면 살아 움직이는 인형들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 <에이아이>(A.I.)에서도 곰돌이 로봇이 걸어 다니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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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집 다이노벰버(dinovember.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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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공룡 인형들이 살아나서 집을 엉망으로 만든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사는 사진가 리프 튜마는 아내 수전과 네 명의 자녀를 키우는데, 아이들에게 “얘들아, 지난밤에 공룡들이 나타나서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이리 나와 봐!”라고 말하며 유쾌한 장난을 쳤다. 아이들의 경탄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이 부부는 그 이후로도 집을 기꺼이 공들여 한 달 내내 어지럽혔다. 아이들은 공룡들이 한 짓으로 알고 즐거워했다.
플라스틱 공룡 인형들은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를 잔뜩 풀어놓고, 싱크대를 거품 천지로 만들고, 시리얼 상자를 엎어 난장판을 만들었다. 어느 날은 계란을 깨뜨리고, 어느 날은 베개 싸움을 하고, 어느 날은 벽에 크레용으로 낙서를 했다. 이 흔적들은 리퍼가 만든 사진집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어떤 사진에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바나나를 통째로 먹고 있고, 다른 사진에는 스테고사우루스가 계란을 깨뜨린 뒤 노른자를 밟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이 장면들은 이들 부부의 누리집(dinovember.com/dinovemb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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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지난밤에 공룡들이 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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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인형 덕분에 한껏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이 가족은 공룡과 함께 보낸 11월을 ‘다이노벰버’(dinovember)라고 이름 붙였다. 이 부부의 위트 넘치는 이벤트는 여러 해 계속되었다. 그 결과물을 모아 <지난밤에 공룡들이 한 일>이라는 사진집을 냈다. 올해에는 후속작 <학교에서 공룡들이 한 일>도 출간됐다.
이 가족의 유쾌한 상상이 책을 읽는 이들의 즐거움으로 번져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창의력이 별건가? 공룡 인형이 밤마다 일어나 걸어 다닐 거라는 상상이 창의력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 피천득도 곰 인형들에게 안대를 채워 재울 정도로 곰 인형의 충실한 반려자였다.
나는 내 방식대로 상상을 시작했다. 연남이는 나 대신 집에서 다림질을 해 주고 만두도 빚고 과자도 굽는다고, 술빵이는 나 대신 가끔 회사에 가서 일한다고 말이다.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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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 연남이가 다림질하는 풍경. 정소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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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 술빵이가 만두를 빚는 장면. 정소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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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 술빵이가 사무실에 출근한 장면. 정소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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