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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0 19:59 수정 : 2017.09.20 20:06

반려인형 술빵이와 잠든 아들. 정소영 제공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반려인형 술빵이와 잠든 아들. 정소영 제공

평범한 곰 인형 술빵이의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은 우리 집에 아기가 생기고부터다. 그 전까지는 주말이면 카페에서 사진이나 찍히던 평화로운 반려인형 생활이었으나 이제 고달픈 ‘아이 돌봄 곰 인형’의 삶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술빵이가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오랜 세월 나와 함께한 반려인형이 이제는 세살배기 아들의 애착 인형이 돼버렸다. 이제 아들은 언제나 ‘빵이 형’을 안고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한다. 술빵이 덕분에 스르르 잠이 드는 걸 보면 과연 ‘육아 능력자’ 곰이구나 싶고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양치질 안 하겠다고 떼쓰며 도망 다니다가도 “술빵이 형이 치카치카 해 줄까?” 하고 물으면 얌전히 입을 벌린다. 술빵이가 칫솔을 잡은 것처럼 하려고 곰 인형 팔이랑 칫솔을 한데 쥐고 있다가 슬쩍 내 손으로 칫솔을 바꿔 잡으면 금세 알아챈다. 끝까지 술빵이 형이 닦아 주듯이 해야만 한다. 목욕하기 싫어할 때도 욕실에 술빵이를 앉혀 놓으면 순순히 목욕을 한다. 응원하듯 지켜봐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억지로 화내면서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니 참 다행이다.

이젠 둘이 매우 친해져서 어린이집 갈 때도 아들은 “빵이 형, 갔다 올게!” 하고 이불을 덮어 주곤 한다. 물론 같이 있을 땐 깔아뭉개고 꼬집고 발로 밟고 걷어차고 그렇게 과격해질 수가 없지만! 그런 건 다 ‘아이 돌봄 곰 인형’의 고단한 숙명이다.

더운 여름날 커다란 곰 인형 술빵이를 안고 다니는 아들을 보며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마디씩 보태는 경우가 많다. 거 좀 작은 인형을 데리고 다니지 더운데 그렇게 큰 인형을 안고 다니느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얘가 아니면 안 되는걸요?

사실 술빵이는 털이 있는 인형이라서 아이의 호흡기에는 안 좋은 편이다. 다만 위로가 되는 존재이니까 아이의 코가 간질거려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한다. 반려인형이란 그런 이유 때문에 바꿀 수 없는 존재니까.

내 걱정은 따로 있다. 내 인형인데 자꾸 자기 인형이라고 아이는 우긴다. 나중에 좀더 크면 알아듣게 잘 얘기해야겠다. 내가 술빵이와 함께한 시간이 훨씬 길었다고, 술빵이만큼은 양보 못 한다고 말이다.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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