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0.26 09:40
수정 : 2017.10.26 14:44
소영이의 반려인형
헬로키티 고양이 인형과 딕 브루나가 만든 토끼인 미피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아이다운 동글동글한 모습은 둘 다 같은데, 키티는 ‘나 여자요’ 하고 드러낸다는 점이 다르다. 키티는 커다란 리본을 붙이고 핑크색 옷을 입고 있다. 반면 미피는 사람들이 여자답다고 일컫는 특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원피스를 입었지만 빨강, 노랑, 주황, 파랑 같은 원색이고 특별히 얼굴에 애교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피를 남자아이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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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마우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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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성별을 구분하고 여자 인형에게 곱게 리본을 달아 주는 전통은 유구하다. 월트디즈니사에서 미키마우스의 여자친구인 미니마우스에게, 도널드 덕의 여자 친구인 데이지 덕에게 리본과 속눈썹을 제공한 이래 수많은 캐릭터가 이를 따라해 왔다. 1993년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였던 꿈돌이에게도 꿈순이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에서도 앰뷸런스를 의인화한 여자 캐릭터 ‘앰버’는 핑크색 리본과 속눈썹을 장착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돌본다는 ‘여자다운’ 특성과 함께 말이다.
그런가 하면 네이버가 만든 라인프렌즈에서는 최근 곰돌이 브라운의 인기에 힘입어 여동생 ‘초코’를 선보였다. ‘초코’는 커다란 핑크색 리본을 달고 있다. 패션과 뷰티 트렌드에 민감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이란다. 피부색마저 브라운보다 밝은 편이다.
캐릭터나 인형을 만들 때는 개구지고 모험심이 넘친다든가 친절하고 상냥하다든가 따위의 성격을 부여하게 마련이다. 이 성격이 실제보다 어느 쪽으로 치우쳐 강조되더라도 ‘남자=모험심’, ‘여자=친절함’으로 고정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인형은 귀엽고 작은 ‘어린아이다운’ 모습을 강조할 때 굳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규정할 필요조차 없다. 어린아이는 어차피 남자인지 여자인지 티가 안 나니까. 그런데도 많은 인형이 핑크색 리본을 달게 되는 속사정은 이러할 것이다. ‘어떤 캐릭터를 창조한다’ → ‘당연하게도 기본값은 남자로 설정된다’ → ‘뒤늦게 여자친구 또는 여동생을 제공해줄 마음을 먹는다’ → 원래의 모습에서 리본 같은 걸 달고 있는 모습으로 손쉽게 변형한다, 끝.
여자인 경우에만 특별히 성별을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쾌한 일이다. 굳이 필요가 없는데도 규정하려 드는 태도에서는 대상을 지배하려는 속내마저 읽힌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박. 그 강박에서 벗어나야만 다들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이다. 리본을 달기 싫은 인형들이 모두 리본을 떼버리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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