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09 10:05
수정 : 2017.11.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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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에서 출시한 ‘나사(NASA)의 여성들’ 피규어 인형 세트. 조지 타케이(George Takei)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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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이의 반려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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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에서 출시한 ‘나사(NASA)의 여성들’ 피규어 인형 세트. 조지 타케이(George Takei)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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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본다면, ‘보들보들파 vs 딱딱파’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보들보들파’는 솜이 든 털 뭉치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곰일 수도, 강아지일 수도, 토끼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동물의 형상을 띠고 있을 것이다. 포유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귀여움을 강조해서 우리 안의 보호 본능을 끌어낸다.
‘테디 베어’야말로 ‘보들보들파’를 이끄는 리더 격 존재다. ‘테디 베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알려진 대로다.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1902년 곰 사냥에 나섰다가 아기 곰을 쏘지 않고 놓아준 일화가 신문 만평에 실린다. 그 만화를 보고 장난감가게 주인 모리스 미치텀은 자기가 만든 곰 인형에다 루스벨트를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 ‘테디’를 붙인다. 그 이후 이 봉제 곰 인형의 인기는 루스벨트의 정치적 인기와 더불어 높아져 갔고, 20세기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전장의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 털 뭉치 인형들은 품에 안기고 쓰다듬어지고 비벼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렇게 털이 빠지고 솜이 눌려 낡아 가면서 반려인형으로서의 매력이 완성된다.
반면 ‘딱딱파’는, 인형을 만지며 촉감을 만족시키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머릿속으로 감상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캐릭터가 주는 서사 구조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소속감과 수집 욕망이 거기에 덧보태진다. 잘 보이는 장식장 안, 또는 책상 위가 이 ‘딱딱파’의 반려인형들이 자리할 곳이다. 귀여운 동물보다는 사람의 형상인 경우가 훨씬 많다.
미니 피규어 완구의 예를 들어 보자면, 독일의 장난감 브랜드 플레이모빌이 대표적일 것이다. 1974년 첫번째 테마를 출시한 이래 지금까지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역사적 고증과 유머를 곁들여 가며 계속 새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딱딱파’ 인형들은 디테일한 묘사만으로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워낙 다양한 시리즈가 있다 보니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인형을 골라 보는 재미도 있다.
블록 장난감으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 완구 레고에서도 피규어 인형을 만든다. 2013년 이래로 여성 과학자 세트가 출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미니 피규어를 바라보고 있으면 작은 불상이나 성모상을 곁에 두고 지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언젠가 생활문화사적 측면에서 이 인형들이 조명받을 때는, 곁에 두고 바라봄으로써 날마다 기운을 얻는다는 점에서 종교적 형상과 비슷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보드라운 인형과 딱딱한 인형. 나는 어느 쪽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뿌리 깊은 ‘보들보들파’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한번 반려인형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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