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17 19:36
수정 : 2018.01.17 19:50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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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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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인형은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걸리지만.
요즘처럼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겨울이면 나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계절이 바뀌어 지난겨울에 입던 옷을 꺼내면 켜켜이 쌓여 있던 감기 기운의 기억이 딸려 나온다. 그래서 나에게 겨울의 곰인형은 다른 계절보다도 더 위로하는 존재다. ‘반려인형’으로서의 몫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이번 감기는 걸린 사람들이 다들 증언하듯이 엄청난 근육통과 함께 찾아왔다. 독감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회사에 하루이틀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가족들이 옮을까 걱정이 되어 물컵도 수건도 따로 쓰고 코 푸는 소리로 잠 깨울까 싶어 거실에 혼자 나와서 잤다.
새벽까지 코를 풀 때, 열이 나서 땀이 났다가 식었다가 할 때,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 할 때, 외롭고 아픈 나와 고스란히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것은 반려인형이다. 격리가 필요한 병에 걸렸을 때 반려인형은 빛을 발한다. 혹시나 옮길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치 묵주를 돌리듯 인형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술빵이의 보드라운 감각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콧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괴로운 시간도 조금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안고 잠들기, 이불과 함께 꿰매 놓은 듯이 한데 뭉쳐져 있기, 인형의 코앞에다 재채기하기, 술빵이가 코 푸는 것 같은 사진 찍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아득한 시간을 혼연일체가 되어 보내고 나면 반려인형과 나는 한층 더 친해져 있다.
아플 때 곰인형의 얼굴을 바라본 적이 있는지? 신기하게도 그럴 때는 한층 걱정하고 돌봐주는 것 같은 얼굴이 돼 있다. 고통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어 더욱 외로워지지만, 반려인형은 내 모습을 투영시킨 존재여서 내 고통을 더 알아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이렇게 아플 때나 슬플 때나 나와 함께하는 곰인형이 좋아서 나는 그런 순간을 ‘위로 버전의 곰돌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시 기운을 차리면 무엇을 할지 반려인형 술빵이와 함께 이불 속에서 정해본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지. 맞다, 그 드라마 봐야 되는데. 날씨 풀리면 좋은 데 놀러 가서 사진 찍어야지.
아, 그리고 아낌없이 주는, 마음 넓은 간병인형에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개운한 목욕이다.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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