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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08 10:51 수정 : 2018.02.08 10:56

할아버지 곰 순남이. 정소영 제공

[ESC] 소영이의 반려인형

할아버지 곰 순남이. 정소영 제공
요즘 지인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자기 곰 인형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사실은 나도 어렸을 때 데리고 자던 인형이 있었는데요, 우리 남편한테도 인형이 있는데요, 이런 식이다. 인형 병원이 궁금하다고 알려 달라는 연락도 받았다. 낡은 인형들이 잘 치료받길 바라며 소상히 알려드렸다. “나도 열두 살 때까지 쥐고 잠들던 이불이 있었어”라고 얘기를 꺼낸 선배도 있었다. 빨지 못하게 해서 엄마와 실랑이했던 어린 시절 얘기, 지금도 색깔과 무늬와 냄새까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사진 한 장이 없어서 이제 와서는 아쉽다는 얘기였다. 나도 안타까웠다. 사진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 지금까지 그 애착 이불이 남아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이불을 가끔씩이라도 만질 수 있다면, 마들렌 과자를 맛보듯이 유년의 세계와 급속히 연결되는 경험일 텐데.

나에게 반려인형은 다행히도 추억 속의 존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한파 속에서 집을 나설 때 주머니 안에는 핫팩 대신 곰 인형 순남이가 들어 있다. 순남이도 추울 테니 옷을 두 겹 입혔다. 인형이 들어 있어서 불룩한 주머니가 뿌듯하다. 순남이를 만지작거리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서 나는 하루치 위로를 꽉 차게 전달받는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을 함께 탈 때도 나는 순남이 눈을 들여다보면 웃음이 배어 나온다. ‘꽥! 와, 진짜 사람 많다!’ ‘근데 나 잃어버리면 안 돼! 꽉 잡고 있어!’ 순남이도 내게 눈으로 대답한다. 소리 내어 말하고도 싶지만 그러면 너무 이상한 사람 되니까 침묵 속에서 하는 인형 놀이로 만족해야지.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작은 곰 인형과 나는 무해한 즐거움을 누린다. 정말 떨어뜨릴까 봐 걱정이 되어 주머니에 다시 쏙 집어넣었지만.

페이스북에서는 5년 전 오늘, 7년 전 오늘 내가 무슨 글을 올렸는지 알려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다채로운 순남이 사진을 보면서, 곰 인형의 얼굴이 젊다는 걸 구별해 내고는 빙긋 웃는다. 이런 거 알아보는 사람은 나뿐이겠지. 이렇게까지 일관되게 곰돌이와 함께한 인생이었나 싶어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순남이와 술빵이와 연남이와 재미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다들 자기 안의 소중한 존재, 보들보들한 것을 좀 드러내고 살아도 괜찮지 않으냐고 말씀드리고 싶다. 할아버지 곰 순남이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다른 반려인형들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끝>

정소영(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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