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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0 13:52 수정 : 2017.07.20 13:56

[esc] 엄지의 짬짬 놀기

텅 빈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불을 끄고 집에 가는 날, 불 꺼진 공간을 보면서 가끔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서른 살은 지금의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학을 남들보다 잘한다는 아버지의 판단 때문에 이과를 선택해야 했고,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공대를 가야 했다. 20살까지는 인생의 여러 선택지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답대로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이후에 살아온 대로 정답만을 찾으려고 하니 막막한 순간이 많았다. 어쩌다 들으러 간 강연에서 ‘한번 사는 인생 세계 일주에 도전해 보세요’라는 말도 맞는 것 같았고, 반대로 현실은 각박하니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도 정답처럼 들렸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정작 ‘나’와는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답을 찾기 위해 ‘일단은 적어보자’를 실천했다. 문방구에서 전지를 샀다. 살면서 하고 싶었던 것, 했던 것, 좋았던 것, 싫었던 순간 등을 세세하게 적어 보았다.

6장에 빼곡한 글씨들을 펼쳐 놓고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을 좋아했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놀라운 건 미술에도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로 한 일은 혼자 여행을 다닌 것이었다. 혼밥, 혼술, 혼여 등은 요즘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철저하게 혼잣말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행복, 슬픔, 짜릿, 좌절 등 내 몸속에 있지만 잘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 밖으로 꺼내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예민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강의와 자기계발서에서 말해주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불안하고 겁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세계 일주는 무리였다. 당장 학자금을 갚아야 하는 불안함이 있던 나에게 ‘도전하라, 청춘’이라는 말은 먼 외계의 말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욜로’(YOLO) 하다가 골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한 번뿐, 현재를 즐기자는 뜻이지만 현재를 즐기기 전에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 삶의 가치관과 방향은 어떤 것인지 잠시 생각할 쉼표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저마다의 해답은 있다.

엄지(광고회사 4년차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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