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31 10:26
수정 : 2017.08.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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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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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SO COOL,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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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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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병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1년 전쯤, 한 소셜네트워크에서 ‘파란 병’을 보았다. 목은 가늘고 배가 많이 나왔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지만, 분명히 바르게 놓여 있다. 음, 다시 떠올려보니 파란색이 아니라 하늘색이다. 맑은 날 하늘을 가위로 오려 병을 만든 것 같다. 이 병이 건물 외벽에 그려져 있고, 건물 내부에도 그려져 있고, 나무로 만든 간판에, 가방에, 테이크아웃 커피 잔에 그려져 있다.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 ‘파란 병’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빨리 걷고 있어, 바닥에 뭘 자꾸 흘리는데 주울 겨를도 없지. 행복하지 않아.’ 그 사진들이 어떻기에 그러냐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잠시 멍하니 앉아 있으라고, 주변을 서성이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쓸데없이 창밖을 바라보라고,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그래서 어느 날 눈물이 났다. 그냥 그랬다. 나중에 알았지만, 파란 병은 ‘블루보틀’(#bluebottle)이라는 이름의 커피 브랜드였다. 한국의 여러 기업이 수입하려고 했으나 아직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다행인가? 그럼, 다행이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2005년 친구의 차고를 빌려 블루보틀을 시작했다. 바리스타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준다. 그래서 블루보틀 매장에 가면 누구나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기다리면서 뭘 할까? 스마트폰을 보려나? 같이 커피 마시던 옛 애인을 떠올리려나? 벽에 그려진 커다란 하늘색 병을 바라보며 멍하니 그냥 있을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게 누구에게 의미가 있어? 허울뿐인 수사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소중한 친구가, 지금,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오늘을 느리게 살면 좋겠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우성(시인, ‘미남 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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