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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0 11:41 수정 : 2017.07.20 19:14

김희수 작가의 딸과 임스체어. 김희수 제공

[esc] 이동섭의 빠담빠담

김희수 작가의 딸과 임스체어. 김희수 제공
“며칠 전 용산구 재활용센터 앞을 지나가는데, 눈에 띄는 테이블을 발견했어요. 어! 하는 느낌이 들어 봤더니, ‘임스’(Eames) 라운드 테이블 두 개를 쌓아 뒀더라구요. 진품이었어요. 7만원에 샀어요.”

말도 안 돼, 라고 말해버렸다. 지금 ‘이베이’에서 500~600달러(한화 50만원 이상) 정도 한다. 빈티지 가구 딜러들은 1천달러 이상에 팔고 있다. 깜짝 놀랄 ‘득템’의 순간이다. “인근에서 걸그룹 멤버 ○○이 촬영하고 있었어요.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그 멤버, 정말 예쁘다. 혹시 굴욕을 느낄까 싶어 이름을 가렸다.

옛말처럼, 눈이 보배다. 보배의 눈을 가진 김희수(40·순수미술) 작가는 의자와 디자인 얘기를 하면, 눈은 반짝, 표정은 생기 가득, 얼굴은 빛난다. 그의 쿵쾅쿵쾅 뛰는 심장에 내 심장도 덩달아 빨라진다. 프랑스어 ‘빠담’(padam)은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소리로, 김 작가는 의자와 오디오에 빠담빠담거렸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김희수 작가는 뉴욕을 거쳐 서울에서 오브제를 활용한 조소와 회화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것들에 관한 동경이 컸다. 시대를 빛낸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오디오 수집에 몰입하게 된 이유다.

소유는 호기심을 자극하여 지식을 쌓게 만든다. 임스의 의자를 갖게 된 김 작가도 검색과 책을 통해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나갔다. 실용적이면서 깔끔한 동시에 모던한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임스 체어’는 미국의 디자이너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들은 허먼밀러, 비트라 등 세계적인 가구회사와 협업하며 수많은 디자인 명작을 남겼다.

그의 득템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진입비용과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 싼 걸 비싸게 사기도 했고 가짜를 진짜로 속기도 했다. 그러면서 많이 배웠다. 여자친구는 부인이 되어서도 한결같이 “오빠, 사”라며 김 작가를 응원해준단다. 부럽다.

“작품 팔아 돈 생기면 비싼 것도 샀어요. 결혼 첫해는 만 몇천 달러짜리도 사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 거죠(웃음).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의자는 500개 이상, 오디오는 300~400개 정도? 두 개 합치면 천 개 더 샀으려나?”

앞으로 몹시 친하게 지내고 싶어졌다. 그가 예쁘고 귀한 것들을 많이 가져서도 그렇지만, 그것들을 갖게 되는 과정과 디자인의 특징은 물론 디자이너들의 가족사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들이 정말 재미있다. 뉴욕 차이나타운 길거리에서 주운 의자부터 조지 나카시마의 장까지 그의 컬렉션은 다양하다.

그는 아무리 비싸더라도 유리 장식장에 고이 모셔두지 않는다. 의자들은 실제로 사용해서 낡기도 하고, 딸아이의 낙서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심지어 개조도 했다.

“처음 샀던 임스의 의자가 원래는 에이치(H) 모양의 다리인데, 흔들의자로 바꿨어요. 당시 임신한 아내가 편하게 앉게 하려고요.”

이렇듯 그가 산 의자들은 가족들과의 기억이 더해져 추억의 매개체가 되었다. 청계천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겸 쇼룸(인스타그램 @182darkbraun)에 갔을 때, 제발 팔아달라고 애원과 설득을 해서 간신히 디터 람스의 커피그라인더 하나를 산 적이 있다. 오렌지색이 참 예쁘다. 하지만 나의 부인님께서 그곳에 자주는 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사는 순간이 제일 짜릿하죠. 얼마 지나면 후회의 연속이 돼요. 그런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2주 후면 또 사는 거죠.”

모든 짜릿함은 대가를 요구한다. 구매의 쾌감은 돈의 압박과 또 사버리고 말았다는 후회와 짝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달콤한 후회인가. 마지막으로 빈티지 제품의 구매 노하우를 물었다. “공부밖에 없어요. 수업료를 치러야 되죠. 직접 사봐야 돼요.”

자신의 심장을 빠담빠담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나이 들어 갈 테니까.

이동섭(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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