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31 10:14
수정 : 2017.08.31 10:17
[ESC] 이동섭의 빠담빠담
|
송창일씨 청첩장.
|
“이문재 시인의 시 ‘어떤 경우’를 낭송하며 프러포즈했어요. 여자친구가 정말 좋아해서 청첩장에도 썼어요.” 결혼 프러포즈를 시로 하는 남자라니. 달달하고 로맨틱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그다운 프러포즈다. 한 대형 외서수입사에서 영업 업무를 담당하다가 최근에 퇴사한 송창일(33)씨는 트위터에서 ‘독서봇’(Reading bot)으로 유명하다. 그의 게시물을 읽는 팔로어는 32만3841명.(2017년 8월 기준) 인기 연예인과 비슷할 만큼 꽤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감성 에세이를 주로 출간하는 유명 출판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안도 받아 면접까지 봤다. 경영학과 출신으로 문학과 거리가 멀었던 그가 파워 트위터리안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최승자 시인의 ‘삼십세’의 한 구절을 만나면서였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살은 온다.’
2012년 휴학하고 회계사 공부를 하던 때였다. 이미 합격한 친구에 비해 그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 무렵 그 구절을 만났다. 어떤 문장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울린다는 느낌을 처음 경험했다. 그 강렬한 체험으로 아름다운 문장의 힘을 절감했다.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좋은 문장은 사람을 움직인다.
“책을 읽다 보면 제 생각이나 감정이 하나의 문장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그런 문장을 찾으면 환희를 느껴요.” ‘문장수집가’로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하는 이유다. 좋은 문장 하나를 만나면 그것을 곱씹는 맛의 여운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커피 한 잔이, 한 곡의 음악이, 30분의 산책이 그럴 것이다. 수단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만을 책 속에서 캐내는 문장수집가는 “아주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편협할 수 있어요. 숲보다는 나무를 본다고 해야 할까요?”라고 말한다. 송창일의 수집행위를 잘못된 독서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나는 새로운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저서에 ‘인생은 몇 개의 문장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라고 썼다.
“1000명 중 한 명이라도 제가 올린 게시물로 인해 책을 사면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제 팔로어들이 책을 사셨다고 할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책, 사람, 소통은 그의 인생을 떠받들고 있는 세 기둥으로 보인다.
그는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려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다음 책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기 때문에 ‘독서봇’을 계속 한다고 한다. 그의 말이, 생각이 아름답다. 팔로어 수가 많으니 책을 보내준다는 출판사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직접 사서 읽는다. 그래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리니까. 1년에 최소 100여권 정도를 꾸준히 읽는 송창일은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는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같은 것이다. 좋은 문장을 마음에 품고 살면 좋은 사람이 되는가 싶다.
“앞으로도 책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제가 읽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도서들을 사람들에게 직접 알리고 판매하고 싶어요. 지금 많이 생기는 독립서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독서봇’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감별하는 감과 촉을 갖게 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적중률이 높아졌다. 출판을 비롯한 여러 업종의 영업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고, 출판계의 내부 사정도 잘 알게 됐다. 그러니 언젠가 그가 선별한 책들이 모여 있는 서점이 생기면, 아주 자주 그곳에 들르게 될 것 같다.
이동섭(예술인문학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