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던 제게 레코드숍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였어요. 이제 제가 레코드숍 주인이 됐어요.”
스마트폰에서 24시간 음악을 ‘(거의)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임대료 비싼 홍대 근처에 레코드숍을 열었을까? 알고 보니, 예전에 문화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음악전문가 토론자로 모셨던 김경진(46)씨였다. 너무나 그다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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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숍 팝시페텔의 주인 김경진. 김경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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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년 동안 그는 서울음반과 로엔, 씨제이이앤엠(CJ E&M), 아이리버에서 외국 라이선스, 가요 투자와 제작, 마케팅, 디지털 음악 서비스, 공연까지 한국 음악 산업의 중심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함께 일했던 후배는 그를 일컬어 ‘음악계의 장인’으로 표현했다. 김씨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헤비메탈이나 월드뮤직 등을 수입하고, 핑크 플로이드부터 지브리 스튜디오 오에스티(OST)까지 아주 다양한 장르의 음반 해설서를 쓸 만큼 폭넓게 음악을 듣고 그것의 가치를 소개해왔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음악 관련 일만큼은 남들보다 잘할 자신이 있어서 음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10년 전부터 회사 그만두거나 잘리면(웃음), 레코드가게를 열겠다고 했었어요. 치킨집이나 식당이 아무리 잘되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저는 정말 못 할 것 같았거든요.”
‘기승전치킨집의 사회’라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아는 음악 산업의 테두리 안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셈이다.
“다들 마음이 공허한 시대잖아요. 음악은 삶의 윤활유예요. 불안과 두려움을 녹이고 일상의 건조함을 풍성하게 만들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귀를 기울이면>에 나오는 노래가 원래는 존 덴버의 곡인데 새롭게 가사를 붙여 극의 내용에 녹이고 독특한 편곡을 더했다는 등 노래가 품고 있는 속 깊은 얘기를 해드리면, 너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호기심과 열정으로 뭉쳐진 지식을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주 매력적이다. 김씨가 들려주는 음악과 이야기에 젖다 보니,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음악이 좋을까?
“음악은 나를 제일 행복하게 만들어주니까요. 수많은 멜로디와 악기, 목소리, 가사의 조화로 음악은 모든 감각을 극대화시키고, 감정을 고양시켜서 엄청난 쾌감을 주거든요.”
음악을 통해 그런 궁극의 즐거움을 느꼈던 최초의 경험은, 1970년 발표된 핑크 플로이드의 ‘아톰 하트 마더’(Atom heart mother)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음악적 황홀경을 체험한 23분짜리 가사 없는 연주곡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가슴이 뛴다. 당연히 핑크 플로이드는 그에겐 인생의 밴드다. 그래서 그가 연 레코드숍 ‘팝시페텔’(@popsipetel)의 벽면에 그들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다. 휴 로프팅의 동화 <둘리틀 선생 항해기>에 등장하는 떠다니는 섬의 착한 부족의 이름인 팝시페텔처럼, 그는 음악을 들으며 사는 부족을 홍대에 만들려는 것일까?
“레코드숍이지만, 음반과 책과 ‘블루레이 디스크’(일종의 저장매체), 디브이디(DVD)도 판매해요. 무엇보다 음악 또는 영화, 인문학 여러 분야에 대한 감상회, 강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요. 좋게 말하면 작지만 다채로운 문화 공간이랄까요? 제가 좋아하고 자신있는 걸 펼쳐 보이려고요. 예컨대 불금에 함께하는 채플린 영화라든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토요일, 월트디즈니사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가득한 일요일. 수요일엔 음악영화 감상, 월요일엔 글쓰기 수업 등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핑크 플로이드와 비틀스.”
즉, 그는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 음악,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단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어, 왔어(요)? 이거 새로 나왔으니, 한번 들어봐(요).”
어릴 적 레코드숍에 들어서면 들었던 주인의 친숙한 그 말을, 많은 사람들이 팝시페텔에서 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가 ‘아톰 하트 마더’를 발견했듯이 누구나 그런 곡을 발견하길 바란다. 음악 없이도 살 수 있지만, 그런 삶은 얼마나 지루한가. 음악을 들으며 나이 먹어가는 것, 낭만적이다. 인생은 짧다. 음악을 듣자.
이동섭(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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