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27 20:21
수정 : 2017.12.27 20:30
[ESC] 이동섭의 빠담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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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씨. 이동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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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 시급이 2000원 정도는 돼요.”
웃을 일이 아닌데, 까르르~ 웃었다. 서울 성북구 혜화동에 자리한 고양이 전문서점 ‘슈뢰딩거’(인스타그램 @catbookstore)를 운영하는 김미정(32)씨의 웃음소리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원했던 삶을 살고 있어 만족하기 때문이란다.
“어차피 돈을 못 벌 거라면 어릴 적부터 로망이었던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사서자격증을 따놓아서 도서관을 운영할 수도 있는데, 도서관은 수입 없이 계속 돈이 투자되어야 하니까 지속 가능성이 없잖아요. 그런데 서점을 하면 수입이 생겨 생활이 가능하겠더라고요.”
애초 꿈은 사서였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정작 도서관에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꼭 축구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축구 해설가로 꿈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김미정씨도 대학 동창과 함께 서점을 열었다. 그런데 왜 고양이 전문 서점일까?
“어릴 때는 고양이, 개, 닭, 소 다 무서웠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고양이가 등장하는 짤방을 보면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어요(웃음). 사람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하는 반려동물인 주제에 너무 당당한, 그런 성격이 좋더라고요.”
조곤조곤 차분하게 일정한 톤을 유지하던 김씨의 말이 고양이 얘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갑자기 빨라지고 표정도 더 밝아졌다. 남편의 지인이 구조한 고양이가 낳은 새끼 한 마리를 입양한 첫째 ‘조르바’부터 ‘미오’, ‘다윈’, ‘메이’까지 네 마리를 키우는데, 키우게 된 과정과 이름 지은 연유가 흥미로웠다.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돈 주고 사긴 싫었다고 한다. 셋째 ‘다윈’은 남편이 존경하는 과학자 다윈의 이름을 따 지은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으로 서점을 시작했으니, 고양이에게 항상 빚지고 있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고양이에게 부담이 되거나 해를 주는 일은 안 할 거예요. 인연이 되어 길고양이가 서점 안으로 걸어 들어오면 모를까, 일부러 서점에 고양이를 데려다 놓지도 않을 거예요.”
고양이 서점이지만 고양이를 데려다 놓지 않은 이유다. 자기 공간에 매일 이방인이 들락거리면 고양이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볼거리로 전락하는 것도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서점에 고양이가 있으면 매출은 오르겠지만,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고양이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참 아름다웠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없는 고양이 책은 절대 갖다놓지 않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서점이 망하더라도 제가 기꺼이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 선정 기준이에요. 그래야 다른 분들께도 자신있게 추천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실용, 역사, 예술, 문학 서적에서부터 만화, 동화, 에세이, 팝업, 엽서집까지 고양이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을 망라했지만, 서점의 책장은 여유로워 보인다. 책을 빼곡하게 진열하지는 않는 것 또한 원칙이란다. 그럼에도 김씨는 “대형 서점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꽤 괜찮은 책들을 여기 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만큼 넉넉히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장서의 수보다는, 취향에 맞는 양서를 갖춰놓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제가 좋아하는 고양이의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손님들끼리 여기에 와서 고양이에 관한 정보와 꿀팁을 교환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차고 즐거워요.” ‘슈뢰딩거’는 고양이 책과 상품을 매개로 김씨와 손님들이 고양이를 향한 애정과 문화를 교류하는 곳이다.
고양이 관련 책들은 신간 출간이 잦은 편이 아니다. 김씨는 서점의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새로운 책들과 상품을 해외에서 직접 사 온다.
“시작을 서점으로 했지만, 고양이 관련 콘텐츠 플랫폼이 최종 목표예요.” 서점 한쪽엔 카페, 전시장, 그리고 고양이 관련 강연 등을 진행하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널리 전파하는 공간이다.
반려동물로 고양이 키우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명을 기르는 일이 유행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면, ‘슈뢰딩거’에 한번 들러보시길 권한다.
<끝>
이동섭(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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