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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출근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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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길에 우리 동네 전봇대 아래 쓰레기봉투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 아이들 책가방이 얼마나 무겁냔 말이야. 그러니까 학습 부담을 줄여 주려면 당신들이 양보해야지. 이렇게 버려지는 걸 괴로워 말라고.
- 미술, 음악하고 국어, 영어, 수학, 과학하고 어떤 게 더 부담이 많은 거 같아? 국, 영, 수를 줄이면 학습 부담이 엄청 줄어들 거야.
- 이 친구야, 그런 과목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거야.
- 수학 못해도 잘만 살던데. 사람마다 필요한 게 다르고, 과목은 다 소중한 거야.
- 그래, 그렇다면 필요한 사람이 골라 배워야 맞잖아. 수요자 중심으로.
- 그럼 수학이나 과학도 골라 배워야지, 왜 강제로 하게 해?
- 어허, 나라가 잘살려면 그건 필수야. 역량을 집중해야 되는 거야.
- 앞으로는 문화 콘텐츠가 생산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 몰라?
- … 암튼 교과 이기주의를 버려. 과목마다 자기만 중요하다면 어떡해?
- 국, 영, 수도 같이 축소하라고 해 봐. 안 한다면 그것부터 교과 이기주의지.
- … 예능은 대학시험에 방해되잖아! 꼭 이 말을 해야겠어?
- 그럼 대학 시험에 예능 내신을 반영하면 되잖아.
난 출근길이 바빠 일어서서 가는데 뒤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 너네들 정말. 야, 앞으로 주 5일 수업이 되면 과목이 줄어야 하는데 힘없는 놈이 죽어야지. 말이 많아 자꾸! 짜증나게!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